북으로 돌려보낸 비전향 장기수들이 한국에서 겪은 인권침해에 대한 보상을 요구, 논란이 일었다. 인도적 배려로 송환한 간첩들이 10억 달러 보상을 요구하는 것은 적반하장이라는 격앙된 반응에서부터 남남 갈등을 노리고 한나라당을 흠집 내려는 술책이라는 분석까지 온갖 얘기가 나온다. 그러나 감정적 대응과 정치적 해석은 공연한 분란을 낳을 뿐이다. 남북관계의 법적 현실을 냉철하게 헤아려 그에 걸맞게 대응할 일이다.
먼저 고려할 것은 북한 주민이 우리 사법기관의 불법행위에 대한 조사와 보상을 요구할 수 있느냐는 문제다. 남북관계를 대등한 주권국가 관계로 본다면 긍정적으로 답할 수도 있다. 그러나 그건 어디까지나 남북이 상호 주권을 완전히 인정하고 인도주의 등 국제법 원칙을 충실히 이행하는 호혜협력 관계일 때 가능하다. 앞으로 남북관계 발전에 맞춰 개별적 인권침해 시비에 적용할 수 있을지 모르나, 서로 정통성을 부인한 채 적대하던 시절로 거슬러 올라가 법적 구제를 논하는 것은 부적절하고 쓸모도 없다.
북쪽이 고소장을 우리 사법기관 아닌 인권위원회와 과거사위원회에 보낸 것도 바로 이런 사리를 잘 알기 때문일 것이다. 국제법상 불법행위 주체이자 보상요구 대상인 국가나 정부를 제쳐둔 채, 독재정권 후예의 처형과 한나라당의 사죄 따위를 요구한 것은 진지한 법적 행위와 거리 먼 정치공세로 봐야 마땅하다. 따라서 행여 인권위와 과거사위가 인권옹호나 진실확인 차원에서 다루는 일은 없어야 할 것이다.
특히 북쪽의 엉뚱한 요구를 놓고 우리끼리 다투는 것은 어리석다. 한나라당이 장기수 북송을 새삼 시비하는 것도 그렇지만, 일부 보도처럼 정부가 한나라당이 고소 대상이라며 어정쩡한 입장을 취한다면 본분을 외면하는 잘못이다. 원칙에 충실한 대응으로 쓸데없는 논란을 피하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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