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의 고궁박물관에는 1895년 청나라 광서황제 때 제작된 자그마한 병풍 모양의 기물이 진열되어 있다. 이 기물은 순금으로 도금되어 있다. 양쪽 높이는 45.5cm, 길이는 18.7cm, 넓이는 14cm이다.
틀 중앙에는 직경 12cm, 높이 14.7cm의 술잔 모양의 용기가 병풍 양쪽 지지대에 가는 막대로 연결되어 고정되어 있으며 용기는 병풍틀에서 일정 방향을 따라 회전하게 되어 있다. 용기에 물을 주입해 절반이 차면 용기는 정확히 수직 모양으로 매달려 있지만, 잔에 물이 가득 차면 용기는 자동으로 회전하며 물을 전부 쏟아낸 다음 한쪽 방향으로 기울어진다.
이 독특한 기물의 명칭은 ‘기기(攲器)’로 주나라 때에도 이미 비슷한 것이 만들어졌다고 한다.
전하는 이야기에 따르면 한번은 공자가 주나라 종묘를 참배하러 갔다가 독특하게 생긴 이 물건을 발견하고 종묘지기에게 “이것은 무엇에 쓰는 물건입니까?”라고 물으니 “우좌기(佑座器)입니다”라고 답했다고 한다. 공자가 다시 “듣자 하니 이 물건에 물을 가득 부으면 거꾸로 뒤집어지고, 물이 없으면 기울어지며, 물이 절반이면 수직으로 선다고 하던데 맞습니까?”라고 되물으니 종묘지기는 “맞습니다”라고 답했다고 한다.
공자는 제자인 자로에게 물을 가져와 과연 종묘지기의 말이 사실인지를 확인하도록 한 연후에 이를 보고 길게 한숨을 쉬며 “어허, 이 세상에 어디 넘쳐서 기울지 않는 법이 있으랴!”하고 탄식했다고 한다.
청나라 황제가 새삼스럽게 자금성에 이 기기를 세운 연유도 “넘치면 쏟아지고, 절반 정도면 바로 서며, 부족하면 기울어진다”는 이치를 모든 황족과 대소신료들에게 알려주기 위해서였던 것이다. 이는 바로 우리가 늘 말하는 ‘과유불급(過猶不及ㆍ지나치면 부족함만 못하다)’ 또는 ‘중용지도(中庸之道)’를 의미한다.
평소 공자가 말하던 “중용지도야말로 가장 지키기 어려운 것”이라는 의미를 이 기기의 바로 서고 기우는 데에서 깨달을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
오늘날 현대 사회에 사는 우리의 잔은 과연 넘칠까? 아니면 비워져 있을까? 혹시 잔을 채우기에만 급급하여 비우는 데에는 미처 생각이 미치지 못하지는 않았을까?
사람을 대할 때에도, 공부를 할 때에도, 업무를 볼 때에도…. 살아가면서 우리의 잔을 한번 진지하게 들여다보아야 하지 않을까 하고 스스로에게 반문하고 싶다.
추이진단 중국인 <한신대 교양학부 교수>한신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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