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타임스는 학생 기자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다. 학생 기자들은 사회 현안에 대한 자신의 의견이나 독후감 등을 기고 형식으로 보낸다. 그런데, 최근 이들을 통해서 매우 흥미로운 경험을 했다. 한국 학생과 미국 학생이 동시에 제롬 데이비드 샐린저의 ‘호밀 밭의 파수꾼’이라는 소설을 읽고 독후감을 보낸 것이다.
한국 학생은 “인생은 하나의 게임과도 같다”라는 심오한 말을 건네고는 곧바로 내용 요약에 들어갔다. 질풍노도와 같은 주인공들의 격정 그리고 시련 속에서 피어나는 희망이라는 주제 속에서 책의 내용이 어떻게 전개되고 있는 지를 높은 수준의 어휘와 함께 써내려 갔다.
반면, 미국 학생은 “많은 학생들이 그렇듯이 나도 반항적인 청소년들을 소재로 한 호밀밭의 파수꾼이라는 책을 들었다” 라며 글을 시작했다. 그리고는 “나는 반항적인 10대는 아니라서 그런지 이 책에 전혀 흥미를 느끼지 못했으며 주인공 홀든의 유아적 객기를 견딜 수가 없었다” 라며 글을 이어나갔다. 이 독후감에서 가장 많이 등장하는 단어는 ‘나’였으며, 책에 대한 자신의 느낌을 최대한 직접적으로 전달하기 위해서 노력한 흔적이 많았다.
한국 학생 기자가 쓴 독후감은 ‘책을 읽고 난 뒤의 주관적인 느낌’이라기 보다는 객관적인 분석에 가까운 글이었다. 개성과 주관을 강조하는 반항적이고 발랄한 우리나라 10대 모습은 사라지고 권위적이고 획일적인 기성세대를 답습하고 있었다. 최근까지 수십 편의 독후감을 받아 보았지만 학생들의 글 속에서 ‘나’를 발견하기란 정말 어렵다.
한국학생들의 책 읽기에서 왜 ‘나’는 존재하지 않는 걸까? 우선, 학생들이 가장 많이 접하는 책인 교과서부터 보자. 잘 정리된 한 권의 노트 같은 느낌이다. 학생들은 ‘노트’를 보면서 교사의 지도에 따라 중요한 부분에 밑줄부터 긋는다. “교과서만 가지고 공부해서 대입 수석 했어요” 라는 식의 이야기가 언론을 통해 강조되고 있다. 이런 교육을 받으면서 독서 습관이 형성된 학생들은 당연히 책을 자신의 느낌을 가지고 읽기 보다는 밑줄을 그으며 분석하고 암기해야 할 대상으로 밖에 여기지 않을 것이다.
둘째, 학생들의 책 읽기 습관을 바르게 이끌 수 있는 독서 수업이 교과 과정에 없는 것도 문제다. 책 읽기 수업 자체가 교사에게 전문적인 지식을 요구하는 것은 아니다. 학생들에게 “이 책에 대한 느낌이 어때?”라고 질문을 던지면 된다. 그러면, 학생들은 질문에 대해 자신의 느낌을 얘기 할 것이다. 이 작업을 통해 분석적 글 읽기에서 자기 중심적 책 읽기로 전환을 가져 올 수 있다. 이처럼 학생들 자신의 느낌을 살리는 훈련을 계속할 경우, 정보 습득 위주의 수동적 책 읽기에서 자신이 책 속에 뛰어들어 저자와 ‘대화’를 나누는 적극적인 방향으로 독서 태도에 근본적인 변화를 가져올 수 있다.
셋째, 책을 경전처럼 받드는 우리 나라 전통에도 원인이 있다. 전통적으로 책은 위대한 스승으로, 삶의 지침으로, 또한 진리를 담고 있는 권위를 가지고 있었다. 지금도 이 같은 내용의 교육이 교실에서 행해지고 있다. 그렇다 보니, 책을 비판적으로 수용하기 보다는 금과 옥조처럼 무조건 수용해야 할 대상이 되고 말았다. 독서에서 ‘자신’은 사라지고 ‘위대한 스승의 말씀’만 남게 된 것이다.
20세기 말부터 진행된 정보 혁명은 미국 교실에서의 혁명을 이끌었다. 지문을 보면서 단순히 정보를 이끌어내는 수동적인 책 읽기 수업에서 학생들의 정보 처리 능력(Information Processing Ability)을 강조하는 새로운 형태의 수업으로 많은 변화가 있었다. 이 같은 수업은 신문 방송 또는 인터넷을 통한 배경 지식 획득, 사전 질문을 통해서 책 읽기 전에 자신의 입장을 정리, 비판적 글 읽기 등의 순서로 정보 취득 자체보다는 정보를 활용하는 능력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1초에도 수많은 정보가 쏟아지는 인터넷 정보화 사회에서 ‘선택적 글읽기’가 강조되고 있다. 선택적 글 읽기는 독자 자신이 글 속에 뛰어들어 저자의 관점을 빠르게 파악하고, 비판하고, 원하는 정보를 얻어내는 적극적인 독서 행위를 요구한다. 독서에도 쌍방향(Interactive) 능력이 필요한 시대가 열린 것이다. 그리고, 같은 소재를 다루더라도 다양한 관점에서 책이 나오기 때문에 지금까지 교실에서 강요하듯이 책을 무비판적으로 수용하거나 밑줄 긋고 외우거나 하는 행위는 시대적 저능아로 전락하는 빠른 지름길이 된다.
흔히 기성 세대들은 요즘 10대 청소년들이 자유스럽고 거침 없고 개성이 강한 세대라고 말한다. 그러나, 이런 10대들이 학교 수업 책읽기 글쓰기 등과 같은 단어들을 접하면, 순간 경직되면서 수동적이고 획일적인 모습을 보여준다. 어린 학생들이 책 읽기에서 ‘잃어버린 나’를 되찾을 수 있도록 교실과 가정에서 많이 도와 주어야 한다.
윤태형 청소년 영자신문 영타임스 편집국장, www.yongtime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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