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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류를 넘어…아시아 문화 허브로] (3) 아시아적 가치를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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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류를 넘어…아시아 문화 허브로] (3) 아시아적 가치를 만든다

입력
2006.01.09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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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상 제작회사 수 1,300여 개. 연간 제작되는 드라마 2,843편에 총 6만9,613회, 33개 주요 도시 156개 채널에서 연간 방영되는 드라마 편수 1,598편. 중국 방송산업의 규모는 그렇게 거대하다. 중국에서 가장 큰 종합 미디어 그룹인 상하이미디어그룹(SMEG)의 드라마국 부주임이자 국가 1급 시나리오작가로 11개 채널의 드라마 제작과 수입, 편성을 책임지고 있는 루슈차오(魯書潮)씨는 “KBS를 방문해 세트와 설비를 둘러봤는데 어떤 것은 우리보다 못한 걸 보고 놀랐다”며 “한국 드라마의 힘은 개방된 사회의 자유와 창조력에서 나오는 것 같다”고 말했다.

중국 미디어 대학의 장야신 교수는 한 발 더 나가 화류(華流) 추월론까지 제기했다. “한국 드라마는 일본 드라마 가격의 3분에 1에 불과해 대량구입이 이뤄졌던 측면이 있는데 한류가 이미 하강기에 들어섰다는 말이 방송사 관계자들로부터 흘러나오기 시작했어요. 기술과 영상에서 이미 격차를 많이 좁힌 중국 드라마가 몇 년 내에 한국 드라마를 따라잡을 수 있을 것으로 봅니다.”

세계 2위의 일본 대중문화 시장 규모는 한국의 40배에 달한다. 일본 대중음악 시장에서 15%의 점유율을 차지하는 초대형 엔터테인먼트 회사 에이벡스는 음반 부문 연 매출이 7,500억 원을 넘는다. 에이벡스는 보아의 일본 음반 제작과 유통을 담당하고 있고 김종학 감독이 23일부터 첫 촬영을 시작하게 될 ‘태왕사신기’의 일본 DVD 판권을 50억 원에 사들이는 등 ‘한류’ 활용에 적극적으로 나서고 있다. 신현택 아시아문화산업교류재단 이사장은 “일본은 큰 엔터테인먼트사들의 시가 총액이 수십 조에 달하지만 우리는 중소기업도 아닌 군소기업인 경우가 대부분”이라고 지적한다.

태국 엔터테인먼트 시장의 70%를 차지하고 있으며 30여 개 계열사(방송사, 드라마 제작사, 음반사, 연예 잡지사)를 거느리고 있는 GMM 그래미. 2002년부터 ‘베이비 복스’를 시작으로 ‘동방신기’ ‘비’ 등 한국 가수를 태국 시장에 소개해온 GMM 그래미는 올해부터 5명의 태국 아이돌 스타로 구성된 그룹 ‘실크’로 유럽과 아시아 시장 공략에 나선다. 이 회사의 카노크랏 아텀렁왓 이사는 “3년 전부터 중국계 여성 2인조 그룹 ‘차이나 돌’을 데뷔시켜 좋은 반응을 얻고 있다”며 “‘한류’라는 일종의 문화적 유행에 이어 태국 바람이 불 수 있도록 준비하고 있다”고 했다.

누구도 예측하지 못했고 기획한 바 없는 한류는 아시아 시장을 무섭게 파고들고 있다. 그러나 이제 우리가 텃밭처럼 여기고 있는 아시아 시장은 그렇게 호락호락하지 않다. 한류로 인해 문화산업의 중요성을 깨닫기 시장한 중국은 거대한 잠재력과 예측 불가능한 속도로 우리를 따라오고 있다. 여기에 한국과 대중문화 산업 분야에서 10년 이상 앞선 일본과, 제2의 한류를 꿈꾸고 있는 태국과 ‘발리우드’로 대표되는 인도 대중문화의 폭발력까지 어느 것 하나 우리에게 유리한 조건은 없다.

아시아 각국이 문화적 헤게모니를 잡기 위해 치열하게 물밑 싸움을 벌이고 있는 상황에서 ‘대장금’은 우리의 갈 길에 많은 시사점을 던져 준다. 권기영 한국문화콘텐츠진흥원 베이징 소장은 “프랑스와 더불어 세계 최고의 요리문화를 자랑하는 중국에서 ‘대장금’이 성공할 수 있었던 원인은 ‘한국 음식이 최고다’라는 메시지 때문이 아니었다”고 주장했다. 요리를 무공에 빗댄 중국 영화 ‘식신’과 달리 ‘대장금’은 음식에 관한 한 단계 높은 가치, 즉 음식을 만드는 사람과 먹는 사람의 관계, 자연과의 행복한 만남 같은 아시아적 사상을 바탕에 깔고 있다는 것. “우리가 앞장서서 칭기즈칸을 소재로 한 영화와 드라마를 거부감 없이 만들 수 있어야 합니다. 소극적이고 부정적인 민족주의를 떨쳐내고 아시아의 가치관을 선도적이고 주도적이며 긍정적으로 보여줄 수 있는 나라라는 것을 콘텐츠를 통해서 끊임없이 보여주는 길만이 중국과 일본보다 한 수 높은 차원의 문화 생산국으로 진입하는 지름길입니다.”

중국 청년보가 분류한 ‘한류의 4단계’는 이런 주장을 뒷받침한다. 이에 따르면 중국인들이 처음 한류에 빠지게 되면 한국 드라마를 보는 재미에 빠져 ‘식음 전폐’하는 단계에 이르고 그 다음에는 ‘자아 상실’에 이른다. 그러나 곧 한류로 인해 전통을 새롭게 해석한 가치관에 빠져드는 ‘자아 발견’의 단계로 나가고, 이어 마지막에는 타인을 배려하게 되는 최고 경지에 이르게 된다는 것이다.

다소 과장됐지만 이 분류에 한류의 미래상이 담겨 있다. 아시아의 역사와 가치, 사상을 현대적으로 해석한 문화 콘텐츠를 통해 ‘아시아인을 끊임없이 일깨우는 나라’로 우리 스스로를 위치지우는 것이 앞선 시스템과 자본을 가진 일본, 엄청난 시장을 가진 중국과 경쟁할 수 있는 길이다.

상하이ㆍ방콕=김대성 기자 lovelily@hk.co.kr

■ "기술력·노하우 팔자" 공동제작 활발

‘보아’와 ‘동방신기’라는 한류 스타를 제조한 SM엔터테인먼트는 지난해 12월 중국인 가수 한경을 포함해 12명의 멤버로 구성된 ‘슈퍼주니어’를 선보였다. 이어 올해 안에는 중국 소녀 장리인(張力尹ㆍ17)을 솔로 가수로 데뷔 시킬 예정이다. ‘중국의 보아’를 목표로 활동하게 될 장리인은 SM엔터테인먼트의 현지화 전략이 이미 상당 수준에 이르렀음을 보여준다. SM엔터테인먼트의 이수만 이사는 “한류가 단순히 우리의 문화를 중국이 일방적으로 받아 들이게 하는 형식이 되어서는 안된다”며 “한국에서도 중국의 문화나 인재를 받아들이는 형식으로 서로 문화가 교류되는 모습을 보여주어야 한다”고 말했다.

‘천국의 계단’ ‘러브 스토리 인 하버드’ 등을 만든 드라마 외주 제작사 로고스 필름은 일본의 5대 영화사인 가도카와사와 손잡고 10부작 드라마 ‘천국의 나무’를 제작하고 있다. 총 30억원이 소요될 ‘천국의 나무’ 제작비는 2월8일부터 이 드라마를 방영할 계획인 SBS와 가도카와사가 5대5로 공동 투자하고 수익은 두 회사와 로고스 필름이 공동으로 나누게 된다.

이 같은 방식의 공동 제작은 가도카와 사의 제안으로 성사됐다. 이 회사의 모기업인 출판사 가도카와 서점은 지난 해 로고스필름의 이장수 PD가 연출한 ‘천국의 계단’을 1ㆍ2권에 걸쳐 소설화해 80만권의 판매량을 기록했다. 바로 이 점이 드라마 공동제작 형태로 발전하게 된 것. 4월 후지TV 방영을 목표로 하고 있는 ‘천국의 나무’에는 한국 탤런트 이완과 박신혜 말고도 재일동포 출신 가수 소닌과 아사미 레이나 등 일본 배우들이 중요 배역으로 등장한다.

반대의 경우도 있다. 최지우의 소속사인 예당 엔터테인먼트는 최지우가 출연하게 될 일본 TBS의 창사 50주년 특집극 ‘윤무곡-론도’에 2억4,000엔(약 21억6,000만원)을 투자한다. 제작비 120억원이 들어가게 될 ‘윤무곡_론도’는 일본 최고의 남자 배우로 손꼽히는 다케노우치 유타카가 주연을 맡았으며 아시아 9개국에 수출 계약이 완료된 상태다.

공동 제작과 현지화 전략을 추진하고 있는 것은 영화계도 마찬가지다. 지난해 김소연이 출연한 영화 ‘칠검’을 중국과 공동 제작한 보람 영화사는 150억원이 투입되는 영화 ‘묵공’을 일본ㆍ중국의 영화사들과 함께 공동 제작하고 있다. 일본 만화를 원작으로 한 ‘묵공’은 중국의 제이콥 창이 감독을 맡고 한국의 안성기, 신인 최시원, 홍콩의 류더화(劉德華)가 출연하며 촬영과 미술, 디자인은 일본 팀이 담당하는 형태로 만들어지고 있다.

이 회사는 또 이만희 감독의 영화 ‘만추’를 중국 버전으로 리메이크 할 계획이다. 보람 영화사의 김용덕 부사장은 “할리우드와 유럽 시장으로 나가기 위해서는 아시아 전체를 우리 대중문화 산업의 내수시장으로 바라 보면서 전략을 만들어갈 필요가 있다”며 “중국과 일본 사이에서 조정자 역할을 해 나가며 아시아 문화 콘텐츠의 중심국이 될 역량이 우리에겐 있다”고 말했다.

한편, 중국에 진출한 한국 콘텐츠 업체 ㈜오렌지의 김동렬(39) 대표는 MBC ‘일요일 일요일 밤에’의 인기 코너 ‘신동엽의 러브하우스’ 포맷을 사와 중국 프로그램으로 제작하는 일을 하고 있다.

김대성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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