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무현 대통령이 사립학교 개혁에 승부를 걸었다. 청와대가 6일 일부 사학들의 신입생 배정 거부 움직임에 대해 초강경 대책을 내놓은 것은 사학들의 저항을 조기에 차단하면서 교육 개혁을 강력히 추진하겠다는 의지를 보여준 것이다. 사학들의 저항에 물러설 경우 권력누수 등 걷잡을 수 없는 사태가 벌어질 것이라는 위기의식도 작용했다고 볼 수 있다.
하지만 사학 개혁 추진의 이면에는 깊은 정치적 고려도 있다고 봐야 한다. 사학의 비리가 엄존하는 현실에서 사학 개혁의 강력한 추진은 논란이 있겠지만 결국 명분과 국민 지지를 얻을 것이라는 전략적 판단이 세워진 분위기다. 거기에는 여권의 수세 국면을 일거에 돌파하려는 의도도 있는 것 같다.
물론 청와대는 “사학 개혁에 다른 의도는 없다”며 정치적 해석을 경계했다. 그러나 여권 핵심 인사들은 “사학법의 본질을 놓고 명분과 논리 다툼이 벌어지면 여야 지지율에도 변동이 생길 수 있다”며 전략여부에 상관없이 사학 개혁이 결과적으로 국민 평가를 받게 될 것이라는 점을 시인했다. 이런 맥락에서 사학 개혁이 5월 지방선거를 겨냥한 전략이라는 분석도 나오고 있다.
더욱이 노 대통령은 정치적 고비마다 승부수를 던져왔다. 유시민 보건복지부장관 내정을 밀어붙이고 사학 개혁을 들고나온 것은 승부수의 다른 표현이라는 시각이 있다. 일각에서는 “1ㆍ2 개각 파동을 잠재우기 위한 국면 전환용”이라는 미시적 분석을 내놓기도 하지만 사학 개혁의 강도로 볼 때 그 차원을 넘어서는 중장기적 승부수라는 게 중론이다.
청와대가 이날 정무점검회의를 가진 뒤 내놓은 사학 대책들은 역대 어느 정권의 교육 개혁방안보다 강경했다. 신입생 배정 거부 움직임을 헌법에 대한 도전으로 간주했고 교사 채용비리 등 사학의 부패구조를 뿌리 뽑겠다고 했다. 임기 초반에 정치부패 척결 등 정치개혁을 강력히 추진한 것처럼 집권 4년차인 올해는 교육 개혁에 모든 것을 걸고 있는 것이다.
노 대통령이 제주지역 일부 사립고의 신입생 배정거부 소식을 듣고 곧바로 이병완 비서실장을 불러 “철저히 대책을 세우라”고 지시했다고 한다. 청와대 관계자는 “노 대통령은 수십년 동안 관행적으로 유지돼온 일부 사학의 비리 구조를 반드시 개혁하겠다는 생각을 갖고 있다”면서 “사학이나 야당의 반발 때문에 물러서지는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사학들이 물러서지 않고 더욱 거세게 저항할 경우 국론 분열과 혼란이 빚어질 수 있다. 여기에 야당의 반대 투쟁이 가세할 경우 정치사회적 갈등과 대결은 수습불능의 국면으로 치달을 수도 있다. 김대중 정부 때 의약분업을 강하게 추진했다가 환자를 담보로 하는 의사협회 등의 파업에 결국 굴복, 권위에 엄청난 상처를 입고 국정운영에 혼선이 생겼던 사례가 재연될 공산도 있다. 2004년 4월 총선을 앞두고 야당의 대통령 탄핵이 승부처가 됐듯이 사학 개혁은 참여정부 임기 후반의 승부처가 될 전망이다.
김광덕 기자 kdkim@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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