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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과세상/ '미래' 미래, 과학이 발전할수록 '나'는 희미해 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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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과세상/ '미래' 미래, 과학이 발전할수록 '나'는 희미해 진다

입력
2006.01.06 11: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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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래는 가능성의 공간으로 열려 있는 만큼이나 무한히 불안한 시간이다. 장생불사의 욕망과 우주 개발의 꿈이 실현되는 들뜬 기대의 한편에는 언제나, 영화 ‘터미네이터’가 그린대로 로봇이 인간을 지배하는 세상에 대한 두려움이 도사리고 있다. 하기야 그만한 디스토피아는 환경 파괴를 막지 못해 인간이 결국 멸종하고 말 것이라는 종말론에 비하면 나을지도 모른다.

인류의 미래가 얼마나 찬란할지, 아니면 얼마나 큰 재앙으로 다가올 지 단정하긴 힘들다. 하지만 닥쳐올 100년, 200년 후의 시간에 인간이 어떤 환경에서, 어떤 생활을 하며, 어떤 꿈을 꿀지 예상해 보는 것은 충분히 가능한 일이다.

영국의 유명한 신경과학자 수전 그린필드가 ‘미래 - 내일의 과학은 우리의 삶과 정신을 어떻게 바꾸어 놓을까’에서 펼쳐 보이는 미래상이 바로 이런 것이다.

환자 맞춤형 줄기세포는 이식한다 하더라도 분열을 계속해 암세포가 될 가능성이 있어 위험하다. 저자는 ‘체온보다 높은 온도에서만 분열하도록’ 줄기세포를 처리하는 기술이 이를 막을 수 있을 것이라고 한다.

휴대전화 문자 메시지와 게임기 사용이 증가하면서 엄지손가락이 다른 손가락들만큼 발달되어 엄지손가락으로 사물을 가리키는 아이들이 등장한다. 생태계 파괴와 시장의 세계화 추세를 볼 때, 농촌의 삶은 동물적인 생존의 수준으로 퇴보할 지 모른다. 로봇은 2020년(불과 15년 후)에는 인간의 지적인 능력을 능가하고 인간과 똑 같은 감정을 갖게 될 것이다.

미래에는 양성애자의 수가 급격히 늘어나 양성애가 정상적인 성 형태가 될 것이다. 미국은 2030년에 전체 인구의 70%가 60세 이상 노인이 될 것이다. 2020년께는 암을 유발하거나 막는 모든 유전자 정보를 확보할 수 있을 것이다.

생활 양식과 일, 교육, 과학 등 우리 삶을 둘러싼 수많은 변화상을 읽는 것만으로 이 책은 충분히 흥미롭다. 하지만 저자가 이 책을 쓴 것은 이런 미래의 일들을 그저 상상해 보기 위한 것만이 아니다. 그는 과학의 발전이 우리의 뇌(정신)와 생각과 느낌과 인격을 어떻게 바꿀 것인가, 즉 기술이 발전에 발전을 거듭하면 우리가 세계를 보는 방식, 그리고 우리 자신을 생각하는 방식이 어떻게 달라질 것인가에 대한 생각도 펼쳐져 있다.

‘쌍방향적이고 고도로 인격화된 정보 기술과, 보이지 않게 침입하는 나노 기술과, 강력하게 발전된 생명 공학이 지배할 미래’는 ‘우리가 어떤 종류의 개인들인지, 그리고 심지어 우리가 도대체 개인으로 머물 수 있는지에 대한 심각한 고민을 불러일으킬 수 있다’고 저자는 우려한다. 미래에는 우리를 둘러싼 사이버 세계의 순간성과 임의성 때문에 자아의 개념이 흔들리고, 우리의 몸과 바깥 세계 사이의 경계가 흐려진다.

삶의 모든 영역에서 전통적인 경계들이 허물어진다. 직장과 집, 일과 여가, 직장 생활과 은퇴 생활, 한 세대와 다음 세대 사이의 경계, 그리고 심지어 가족 내에서의 역할 사이의 경계도 허물어진다. 그런 상황에서 개인의 자아는 당연히 급격 해체될 것이다.

저자는 인간의 본성과 관련해 핵심적인 의미를 가지는 개념은 자아(에고)이며, 그 자아는 우리 시대를 지배하는 새롭고 강력한 과학기술의 힘에 의해 매우 심각하고 유례가 없는 위협을 받고 있다고 주장한다. 그 이유는 개인은 더 이상 타인들과 구분되지 않으며, 에고가 점점 집단화하고 있기 때문이다.

저자는 집단화된 에고, 즉 공적인 자아가 이 시대 테러리즘의 실질적인 이유이며, 미래 사회는 개인적인 에고와 공적인 에고의 분쟁의 역사가 될 것이라고 내다본다. 과학 기술 발전의 격차로 미래의 생활 양식 혁명에서 소외된 다수의 사람들이 ‘제국주의 시대에 경험한 최악의 것보다 더 악랄하고 잔인하게 착취’되는 것도 큰 문제이지만, 개인의 자아를 우리 각자가 지닌 가장 소중한 것으로 지키는 것이 더욱 중요하다는 주장이다.

김범수기자 bskim@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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