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의 전직 국무, 국방 장관들이 백악관에 초청된다는 소식을 접했을 때 올해엔 조지 W 부시 대통령이 달라진 모습을 보여줄 것이라는 기대가 적지 않았다.
이라크 정책 등에서 독선적 행태를 보였던 부시 대통령이 귀를 열어 다른 목소리도 듣겠다는 뜻으로 해석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정작 13명의 전직 국무, 국방장관이 한자리에 모인 5일 백악관 ‘이벤트’는 기대와는 영 딴판으로 돌아갔다.
콘돌리사 라이스 국무장관 등이 케네디 대통령 시절까지 거슬러 올라가는 자신의 전임자들에게 40여분 동안이나 이라크전 정당성 등을 장황하게 홍보한 것은 그래도 참을 만 했다. 문제는 ‘진짜 본론’이었다. 그러나 부시 대통령과 과거의 국정 담당자들이 이라크전 등을 두고 의견을 나눈 시간은 10분 남짓에 불과했다는 전언이다. 본말이 한참 뒤바뀐 것이다.
이런 분위기 속에서 부시 대통령 1기 정부 때 4년간 외교정책을 책임졌던 콜린 파월 전 국무장관은 한마디도 하지 않았다고 한다. 클린턴 정부 시절의 매들린 올브라이트 전 국무장관이 “북한 핵 문제 등에 대한 통제력을 잃고 있다”고 쓴소리를 하자 “일본, 중국, 한국과 최상의 관계를 유지하고 있다”는 공허한 대답이 돌아왔다.
행사의 성격은 사진 촬영이후 분명해 졌다. 카메라 앵글이 맞춰지자 부시 대통령은 공손하게 “시간을 내줘 감사하며 충고를 가슴에 간직하겠다”는 말로 이벤트 연출의 대미를 장식했다.
사진 촬영이 끝나자 부시 대통령은 바로 자리를 떴고 더 할 말이 남은 참석자들은 스티븐 해들리 국가안보보좌관 등과 얘기를 나눠야 했다고 한다. ‘사진용’이 되고 만 행사 뒤로 부시 대통령은 변한 게 없다는 불신의 소리만이 이어지고 있었다.
고태성=워싱턴 특파원 tsgo@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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