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의 비판적인 문예비평가이자 사상가로 잘 알려진 가라타니 고진(柄谷行人)은 1970년대부터 문예적인 창의력을 십분 발휘해 마르크스 사상을 새롭게 읽는 시도를 해왔다. 하지만 그런 ‘자본제 경제나 국가에 대한 계몽적 비판 또는 문화적 저항에서 만족할 수 없었’던 그는 마르크스를 ‘근본적으로 다시 생각하려는 과정’에서 칸트와 마주쳤다.
1990년대 초반부터 칸트를 다시 읽어나가며 마르크스를 칸트적 ‘비판’의 견지에서 재고하는 10년 작업의 결실이 ‘트랜스크리틱’(transcritique)이다. 다소 현란하게 들리는 ‘윤리성과 정치경제학 영역 사이, 칸트적 비판과 마르크스적 비판 사이의 코드 변환’이라는 이 가설은 마르크스 이론과 칸트 철학의 진면목에 대한 나름의 분석이자, 둘을 접목하려는 시도이다.
그는 ‘자본론’에 담겨 있는 마르크스의 통찰은 결국 ‘자본주의 시장 경제가 쉽게 극복될 수 있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과 맞먹는다고 주장한다.
그리고 칸트의 자유론과 책임론에 의거하면서 ‘국가 입장에 선 것이 사적이며, 개인이 모든 국가 규제에서 벗어나서 생각하는 것을 공적’이라고 본 칸트의 ‘공공 개념의 전복’을 수용한다. 그는 여기서 엥겔스나 레닌이 생각했던 생산의 국유화나 일당 독재가 아닌 ‘가능한 코뮤니즘의 재생’을 이끌어 낸다.
그것은 ‘자유롭고 평등한 생산자의 연합 사회’에 의한 ‘개체적’ 소유의 재건을 의미한다. 지역 통화를 축으로 삼아 그가 일본에서 이끌었던 새로운 사회 운동인 ‘NAM’(New Associationist Movement)도 이런 생각에 바탕한 것이다.
김범수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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