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사기관의 잘못된 판단으로 고소ㆍ고발 사건의 처리를 제대로 하지 않거나, 처리를 미뤄 공소시효를 넘기는 사례가 적지 않은 것으로 드러났다.
9번 시도 끝에 억울함 인정 A(39)씨는 2003년 6월 지하철역 부근에서 택시를 잡다가 시비 끝에 다른 사람을 폭행해 입건된 친구를 돕다가 억울함을 느꼈다.
친구는 피해자에게 20만원을 치료비로 주고 합의해 기소유예 처분을 받았지만 이 과정에서 경찰관의 태도가 못마땅했던 것이다.
다음해 2월 A씨는 “조사 당시 경찰관 B씨가 합의를 강요했고 (내가) 재조사를 요구하자 ‘총으로 쏴 죽이고 옷 벗으면 된다’는 폭언과 함께 협박했다”며 검찰에 경찰관을 고소했다.
그러나 검찰은 이 사건이 단순한 진정에 불과하다고 판단, 진정사건으로 접수한 뒤 “경찰관의 혐의를 입증할 증거가 없다”며 ‘혐의 없음’ 결정을 내렸다.
문제는 진정사건이 고소사건과 달리 재정신청이나 항고ㆍ재항고 등 재심리의 대상이 되지 않는다는 것. A씨는 ‘무혐의 결정’을 다시 판단해 달라며 재정신청을 냈지만 검찰은 “재정신청 대상이 아니다”며 거부했다.
A씨는 다시 “재정신청을 받아들이지 않은 것은 부당하다”며 해당 지검의 차장검사 C씨를 직권남용 혐의로 고소했지만 검찰은 이것도 진정으로 분류해 종결했고, A씨가 항고하자 “진정사건은 항고 대상이 아니다”며 역시 같은 조치를 내렸다.
A씨가 이번에는 경찰관 B씨와 차장검사 C씨를 직권남용 등 혐의로 묶어 고소하자 검찰은 이를 고소사건으로 접수했지만 역시 결론은 무혐의였다.
결국 A씨는 ‘검찰의 불기소 처분이 평등권을 침해했다’며 헌법소원(계류 중)을 내고 국가를 상대로 손해배상 청구소송을 냈지만 1심에서 패소했다.
그러나 항소심은 달랐다. 5일 서울고법 민사7부(조병현 부장판사)는 “A씨의 고소를 검찰이 진정사건으로 처리한 것에 잘못이 있다. 고소인지 진정인지의 사건 분류는 수사기관이 자의적으로 할 게 아니라 신청취지를 합리적으로 해석해 처리해야 한다”며 “ 국가는 A씨에게 위자료 300만원을 지급하라”고 판결했다.
수사기관부터 8번 억울함을 호소했다가 모두 거부당하고 9번째 만에 법원에서 간신히 인정 받은 것이다.
사건 묵히다 공소시효 넘겨 전주지검 군산지청은 3일 익산경찰서 D(36)경장을 직무유기 및 허위공문서 작성 등 혐의로 불구속 입건했다.
검찰에 따르면 수사과 고소 담당인 이 경장은 2002년 3건의 고소사건을 배당 받아 조사를 마친 뒤에도 검찰에 송치하지 않거나 상관의 수사지휘를 받지 않는 등 장기간 방치하고 고의로 은폐하려 한 혐의다.
이 경장은 피고소인의 실거주지와 주민등록상 주소지가 다른 점을 이용, 일부러 주민등록상 주소지로 소환요청 서류를 보내고 반송받는 등의 수법으로 사건을 3년 간이나 지연시켰다고 검찰은 전했다.
검찰이 뒤늦게 경위 파악에 나섰지만 D경장이 맡은 고소사건 중 1건은 이미 공소시효가 지나버린 상태다.
앞서 지난달 말 대구지검은 관내 특별사법경찰관에 대한 수사장부 점검 과정에서 대구지방 노동사무소가 임금체불 등 근로기준법 위반 사건 기록 85건을 캐비닛에 장기 방치중인 것을 적발하기도 했다.
김용식 기자 jawohl@hk.co.kr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