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네바다주의 블랙록 사막에서는 매년 10월 지구상에서 가장 빠른 자동차를 가려내는 장관이 펼쳐진다. 자동차경주이긴 한데 자동차엔진이 아닌 제트엔진을 장착한 특수제작 자동차들이 참가해 벌이는 속도 시합이다.
부가티 베이런, 코닉세그CCR, 맥라렌F1등 슈퍼카들도 시속 400km에 가까운 속도를 내지만 이 대회에는 명함도 내밀지 못한다. 1997년 F-4팬텀 전투기용 제트엔진을 장착한 ‘스러스트 SSC’라는 자동차가 시속 1,227.985km를 기록, 최초로 음속을 돌파한 자동차로 기네스북에 올라 있다.
사막 주행장 길이는 20km가 넘지만 속도를 재는 거리는 1.6km밖에 안 된다. 여러 개의 낙하산과 첨단 제동장치를 갖추고도 정지하는 데 많은 거리가 필요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 대회에서의 승패는 속도보다는 완벽한 제동기술을 확보했느냐 여부로 판가름 난다고 한다.
●고객 소리담아 신제품 개발
항공기 자동차 열차 엘리베이터 롤러코스터 등 빠른 속도로 이동하는 물체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제동장치다. 빠른 속도의 추진장치가 필수지만 이 추진장치는 속도를 줄여서 안전하게 멈추게 하는 제동장치가 없으면 쓸모가 없다. 요즘의 교통수단에 제동장치가 없다고 상상해보자. 완전히 멈추는데 필요한 엄청난 공간과 시간 때문에 속도를 자랑하는 문명의 이기들은 아무 쓸모가 없거나 흉기가 되고 말았을 것이다.
참여정부가 집권 4년차로 접어들었다. 의욕에 차서 출범했지만 기억에 남는 것은 갈등과 혼란으로 얼룩진 세월뿐인 것 같다. 교수신문이 지난해 우리 사회를 대변하는 사자성어로 ‘상화하택(上火下澤)’을, 올해의 사자성어로 ‘약팽소선(若烹小鮮)’을 선정한 것을 보면 알 만하다.
지난 한해만 아니라 참여정부 들어선 이후 줄곧 ‘위에는 불, 아래는 물’에 휩싸여 지낸 듯하다. 노자는 ‘큰 나라를 다스리는 것은 작은 생선을 굽는 것과 같다(治大國若烹小鮮)’고 했지만 연초부터 벌어지는 일들을 보면 화로 위의 생선이 온전히 익기를 기다리지 못할 것 같아 걱정이다.
참여정부가 의욕을 갖고 많은 것을 시도하고도 국민이 수긍할 성과를 거두지 못한 원인을 효율적인 제동장치 부재에서 찾고 싶다.
국가정책의 성패는 과단성 있는 추진 못지않게 잘못된 길로 빠지는 것을 방지할 수 있는 제동장치가 제대로 작동하느냐 여부에 달려 있다. 지도자 스스로의 절제, 지도자를 보좌해주는 측근의 바른 간언, 야당 언론 시민단체 등의 비판이 제동장치 기능을 한다.
그러나 대통령과 그 주변 사람들에게서 제동기능은 보이지 않는다. 노무현 대통령의 성향은 그렇다 치더라도 주변에 ‘No’라고 말하는 사람이 없다.
목을 내놓고 바른 소리 해도 모자란 판에 서로 듣기 좋은 용비어천가를 부르느라 야단이다. 내부의 제동장치가 제 기능을 발휘하지 못하면 국민의 불평 불만이라도 귀담아 들어야 하는데, 국민이 불평 불만을 쏟아놓으면 의식수준을 탓하며 역정을 내기 일쑤다.
세계적인 IT업체들이 시제품을 한국시장에 먼저 선보이고 제품 개발자들이 다퉈 한국을 찾는 것은 바로 까다로운 한국 소비자들이 쏟아내는 불평과 불만에서 개선점을 찾고 새로운 제품에 대한 아이디어를 얻기 위함이다.
모토로라 소니 파나소닉 등 세계적 기업들이 국내 소비자동향을 본사에 보고해 제품 개발에 반영한다. 최근엔 최대 인터넷 검색포털인 구글까지 한국어 블로그 서비스에 대한 평가와 개선 아이디어를 얻기 위해 전문가를 파견하는 실정이다.
●국정 '제동장치' 잘 활용해야
누가 봐도 뻔한 코드인사를 되풀이하고 당 내부와 측근의 만류에도 아랑곳 않고 총애하는 사람을 굳이 각료로 내정해 파국을 자초하는 것을 보면 정부의 제동기능은 기업 수준에 상당히 뒤쳐져 있음을 깨닫게 된다. 외국 기업들은 우리 소비자들의 불평 불만에서 기업발전의 모티브를 찾는데 정부는 충정어린 조언조차 들으려 하지 않는다.
국민의 불평과 불만을 잘만 소화해내면 국정의 훌륭한 제동장치로 활용할 수 있고 개선점을 찾는데도 도움을 주는 보약이 될 텐데 귀를 막고 짜증만 내니 국민은 기가 차고 답답할 뿐이다.
방민준 논설위원실장 mjbang@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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