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시아와 우크라이나의 천연가스 분쟁을 전하는 국제 언론은 성향이나 수준에 따라 시각차이를 보인다. 이 분쟁이 단순한 가격 다툼이 아니라 정치 게임이라는 풀이는 일치하지만 논평 방향은 뚜렷하게 갈린다. 이를테면 선정적 대중언론은 에너지를 과거 핵무기처럼 위협수단으로 쓰는 것은 사악하고 어리석은 짓이라고 규정한다.
국제 관행에 어긋날 뿐 아니라 얻는 것 없이 국가 이미지만 해칠 것이란 전망이다. 반면 진지한 언론은 분쟁 배경을 깊이 살피면서 에너지가 전략적 경쟁의 주된 목적 또는 수단이 된 현실을 조명한다.
■옛 소련과 러시아를 폄하하는 데 익숙한 보수적 시각은 러시아의 ‘에너지 제국주의’를 일방적으로 비난한다. 아무리 국제시장 가격에 맞춘다지만 가스 값을 한꺼번에 4배나 올리겠다면서 공급을 중단, 한 겨울 유럽 전체를 불안하게 한 것은 19세기 제국주의적 행동이라는 것이다.
약소국을 세력권에 묶어두기 위해 함대를 몰아 협박하는 포함외교(Gunboat diplomacy)에 비유하기도 한다. 3월 우크라이나 총선에서 유셴코 대통령의 친서방 세력이 다시 승리하는 것을 막으려는 의도지만, 오히려 우크라이나 민족주의를 부추기고 국제사회의 신뢰마저 잃을 것이라는 예상도 나온다.
■그러나 섣부른 예상에 앞서 주목할 것은 에너지를 수단이나 목적으로 삼는 제국주의적 행로는 서구가 한층 열심히 좇고 있다는 지적이다. 아프가니스탄과 이라크 침공이 상징하듯이 중동과 중앙아시아 등의 에너지자원을 노린 세력 확대를 노골적으로 꾀하면서, 러시아가 에너지를 대응무기 삼는 것을 욕할 수 있느냐는 얘기다.
이런 시각에서는 미국과 유럽이 우크라이나의 오렌지 혁명을 지원하고 유럽연합과 나토동맹 편입까지 유도하는 목적도 러시아의 오랜 기득권을 허물고 이 지역의 에너지 자원을 확보하려는 제국주의적 전략이다.
■러시아는 서구의 세력권 침범에 서구적 논리와 전술로 맞선 셈이다. 냉전시대 유물인 ‘우호 가격’ 대신 국제시장 가격을 요구하는 것은 서구가 WTO체제의 공정 경쟁질서를 앞세워 보조금 철폐를 요구하는 것과 같은 명분을 지닌다. 서구가 곤혹스러운 것도 이 때문이다.
지레 러시아의 실책을 떠든 대중언론과 달리 전문가들은 에너지 무기의 위력과 러시아의 힘을 새삼 깨닫게 한 사실을 강조한다. 에너지 제국주의, 자원 전쟁이 격화하는 현실에서 어설픈 도덕적 평가에 신경 쓸게 아니라 에너지 안보 전략을 심각하게 고민해야 한다는 충고다.
강병태 논설위원 btkang@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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