병술년 충무로는 예년과 마찬가지로 다종다양한 영화들을 선보인다.
흥행코드로 자리 잡은 남북관계를 소재로 한 ‘9시 뉴스’ ‘한반도’ ‘꽝포아니야요, 남북공동초등학교’ 등이 올해도 관객몰이에 나선다. 흡혈귀가 등장하는 ‘형사 나도열’과 ‘소풍 가는 날’, 개와 말을 전면에 내세운 ‘빙고’와 ‘각설탕’ 등 소재빈곤의 벽을 넘어서려는 독특한 작품도 적지 않다. 100억원을 웃도는 대작들도 여전히 일대 흥행대전을 준비하고 있다.
다양한 소재와 장르로 무장한 작품들이 치열한 흥행대결을 예고하는 가운데 올해 국내 영화의 주요 키워드는 피와 눈물. 두 사나이의 맞대결을 다룬 느와르 영화가 유난히 많고, 전통적인 장르인 멜로 영화도 풍년이다. 올해 개봉하는 주요 작품들을 통해 한국영화 기상도를 점쳐본다.
▲ 웰컴 투 느와르 월드
음습한 뒷골목 사내들의 거친 숨소리와 날것의 냄새가 물씬 풍기는 느와르 영화의 첫 테이프를 끊는 것은 총제작비 80억원을 들여 12일 개봉하는 ‘야수’. 정통 느와르를 표방하고 있다.
권상우 유지태 주연으로 거물 조직폭력배 두목을 잡기 위한 형사와 검사의 피눈물 나는 활약상을 담고 있다. 1988년 ‘무전유죄 유전무죄’라는 유행어를 만들어냈던 지강헌 사건을 스크린에 옮긴 ‘홀리데이’가 19일 바통을 이어받는다.
‘말죽거리 잔혹사’로 폭력 미학의 질감을 유감없이 보여준 유하 감독은 ‘비열한 거리’로 다시 사나이 세계로 뛰어든다. 청부 살인에 나섰다가 위기에 처한 삼류 조직폭력배의 피비린내 나는 삶을 보여준다.
이르면 5월 극장에서 만날 수 있다. 설경구와 조한선이 주연하는 ‘열혈남아’도 복수심에 불타는 한 사내를 통해 동정 없는 잔인한 세상을 밀도 높게 다뤄 여름 극장가를 노리고 있다. 마약을 주요 소재로 다룬 ‘사생결단’도 눈길을 끄는 작품. 마약거물을 잡으려는 형사와 끄나풀 마약상의 대결을 스크린 위에 펼친다.
피비린내가 스크린을 가득채우며 비장미가 감도는 이들 정통 느와르 영화 이외에도 코미디와 멜로를 적극적으로 끌어안은 변종 느와르도 선보인다.
‘무간도’의 류웨이장 감독이 메가폰을 잡아 화제를 모은 ‘데이지’는 멜로가 섞인 느와르 영화. 한 여자를 동시에 사랑한 형사와 킬러의 피할 수 없는 대결을 그린다. 신하균 주연의 ‘예의 없는 것들’은 혀 짧은 킬러가 무례한 자들을 향해 벌이는 좌충우돌을 코믹하게 그려낸다.
▲ 멜로는 충무로의 운명
지난해 ‘너는 내 운명’으로 성공에 영향을 받은 탓인지 로맨틱 코미디의 퇴보가 뚜렷하고 정통 멜로의 약진이 두드러진다.
설경구와 송윤아가 출연해 19일 개봉하는 ‘사랑을 놓치다’는 10년간 엇갈린 두 남녀를 통해 결혼과 사랑의 의미에 질문을 던진다. ‘번지 점프를 하다’와 ‘내 머리 속의 지우개’를 각각 연출했던 김대승 이한 감독은 정통 멜로 ‘가을로’ ‘청춘만화’을 통해 관객들의 눈물샘을 자극하려 한다.
북에 연인을 두고 온 탈북자의 아픔을 그려낼 국경의 남쪽은 순 제작비 70억 원을 들인 블록버스터형 멜로. 정우성 김태희 주연의 대작 ‘중천’은 외형은 무협이지만 멜로 정서가 가득한 작품이다.
승천하기 전 영혼이 머무는 상상의 공간 중천을 무대로 사랑과 액션을 버무렸다. 대작 ‘역도산’으로 흥행의 쓴맛을 경험한 송해성 감독의 ‘우리들의 행복한 시간’은 독특한 이야기 설정이 관심을 끈다. 세 사람을 살해한 사형수와 세 번 자살을 시도한 여자가 서로의 상처를 치유하는 과정을 담고 있다.
라제기기자 wenders@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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