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계는 올해 1년이 열 두 달이 아닌 열 한 달이나 마찬가지다. 독일 월드컵이 6월9일~7월9일 한 달간 열리기 때문이다. 제 아무리 날고 기는 배우가 출연하고, 스타 감독이 연출한 영화라 해도 월드컵은 맞대결을 펼치기 버거운 상대. 선수들의 발짓 하나하나에 50억 인류가 환호하고 탄식할 지구촌 이벤트를 누가 당해낼 수 있을까.
실제로 한일월드컵이 열린 2002년 6월의 극장가는 썰물이었다. 당시 축구장으로 쏠린 눈을 애써 유혹하려 한 영화들은 줄줄이 죽을 쑤어야 했다. 총 입장 수입은 376억원으로 그 해 최저치를 기록했다. 우리 대표팀의 눈부신 활약이 크게 작용하기도 했지만, 월드컵 기간은 전통적으로 비수기다.
이런 사정때문에 올해 개봉 대기작들은 월드컵 기간을 피해가려 하고 있다. 봉준호 감독의 대작 ‘괴물’도 예외는 아니다.
문제는 지난해 못지않은 편수의 작품들이 개봉을 기다리고 있는 상황서 한 달을 ‘개점휴업’하면 극장잡기가 만만치 않다는 것. 그래서 영화사들은 벌써부터 개봉시기를 저울질하며 눈치 경쟁을 치열하게 펼치고 있다. 작은 영화일수록 개봉 예정일은 고무줄이다.
영화사 관계자들은 이미 완성된 작은 영화라도 설 대목을 넘어 봄에 극장을 잡지 못하면 월드컵과 여름 블록버스터를 피해 가을께나 관객을 만날 수 있을 것으로 보고 있다.
월드컵과 정면승부를 자처하고 나서는 작품도 있다. 충무로 흥행술사 강우석 감독의 ‘한반도’ 이다. 강 감독은 “월드컵 때 개봉을 목표로 하고 있으며 충분히 승산이 있다”고 말한다.
작품의 완성도에 대한 자신뿐만 아니라 일본에 맞서는 민족주의적 내용이 대표팀의 선전과 맞물리면 오히려 상승작용을 일으킬 수 있다는 판단에서다. 하지만 한 배급사 관계자는 “강 감독이 호언장담해도 6월이 되면 실제 개봉을 단행하기 쉽지 않을 것”이라고 내다본다.
이래저래 월드컵은 영화계가 마냥 앉아서 즐길 수 있는 축제 만은 아닌 듯 하다.
라제기기자 wenders@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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