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은 보는 것을 믿는 것일까, 믿는 것을 보는 것일까. 황우석 교수 사태로 온 나라가 떠들썩하다. 논문 조작과 허위 연구라는 충격에 국민은 혼란스러워하고 있고, 극단적인 지지와 비판 여론으로 분열하기까지 했다. 여론의 분열은 사태 초반에만 해도 생명과학을 전공하는 전문가들과 일반 국민 사이에 존재하는 시각차 정도에 그쳤지만, 이젠 ‘황빠’(황 교수 지지자)니 ‘황까’(황 교수 비판자)니 하는 신조어가 만들어질 정도로 심각해진 상황이다.
사실 허위 논문에 대한 진상 규명은 과학적인 사건이고 과학적 진실을 규명하는 과정임에도 불구하고 황 교수에 대한 지지운동이 일어나고 진실을 밝히자는 이들을 황 교수의 적대세력으로 치부하는 것은 흥미로운 사회 현상이다. 비판자와 지지자 사이의 논쟁은 흡사 종교적 신념 만큼이나 절대적인 대립으로 치닫고 있다. 토론 내용을 들여다보면 주장의 근거로 내세우는 사실부터가 다르다. 자신이 원하는 사실 만을 선택적으로 받아들이고, 전체 맥락과는 동떨어진 채 판단하는 경향이 다분하다. 인지심리학자들은 비합리적으로 보이는 이 같은 사고방식이 사실 인간 사고의 본질적인 측면이기도 하다고 설명한다.
2002년 노벨경제학상을 받은 다니엘 카네만(미국 프린스턴대 심리학과) 교수의 이론은 이 같은 현상을 설명하는데 도움이 된다. 1979년 카네만은 “미래의 결과가 불확실할 때 논리적이고 합리적인 사고가 아니라 비합리적이고 편향된 사고에 의해 판단하고 결정한다”는 이론을 정립했다. 카네만의 이론은 고전경제학만으로는 부족한 주식 투자 행동 등을 예측하는 이론의 틀로 활용되고 있다.
예를 들어보자. 전염병으로 600명이 죽을 수 있는 상황이다. 최대한 사람들을 살릴 수 있는 대책이 A, B 두가지가 있는데, 이 대책의 효과를 다음처럼 달리 표현해보자.
1. 대책 A를 선택하면 200명이 살고, B를 선택하면 33%의 확률로 600명을 구할 수 있다.
2. 대책 A를 선택하면 400명이 죽고, B를 선택하면 67%의 확률로 600명이 죽을 수 있다.
1,2는 사실상 같은 의미다. 하지만 1은 아무 것도 안 했을 때 600명이 죽지만 대책을 선택하면 일부 살리는 것으로 기술돼 있다. 반대로 2는 대책을 선택하면 일부가 죽는 것으로 기술돼 있다. 이 때 1을 제시할 경우 많은 사람들은 B를 선택하는 반면 2를 제시하면 대부분 A를 선택한다. 1에서는 200명을 확실히 살리는 것이 낫다고 판단하는 반면 2에서는 모험을 택하는 것이 400명이 죽는 것보다 낫다고 판단하는 것이다. 똑 같은 정보를 놓고도 사람들의 판단이 달라지는 예다.
카네만이 말하는 편향되고 비합리적인 판단의 가장 큰 특징은 ‘확인 편향’(confirmation vias)이라는 것이다. 일반적으로 사람들은 자신이 아는 것이나 믿는 것과 일치하는 방향으로 모든 정보를 해석하고, 범주화하고, 판단하고, 결정한다는 것이다.
흔히 정치인이 같은 사건을 놓고 자기 당에 유리하게만 해석하거나 주장하고, 시민운동가들이 자신의 정책을 지지하는 자료와 의견만 듣는 것, 내용이 엇갈리는 뉴스가 있을 때 내가 보고싶은 것만 보고 기억하는 것 등이 확인 편향의 단적인 예다.
이는 인간 사고의 본질적인 측면이기도 하다. 쏟아지는 정보는 많지만 모든 정보를 정확히 살피고 논리적으로 추론할 수 없기 때문에 내가 기대하는 정보만 선택적으로 처리하는 경향이 있다는 것이다. 즉 정보처리를 효율적으로 하기 위한 인간 두뇌의 전략인 셈이다.
황우석 교수 논문 조작 사건은 처음에는 명확한 사실이 알려지지 않은 불확실한 상황에서 여론은 극명하게 갈렸다. 하지만 이제는 서울대 조사위원회가 진상을 명백히 규명했는데도 불구하고“조사위 발표를 못 믿겠다”는 이들이 있다. 또 황 교수 관련 기사는 아예 읽기를 포기하는 경우도 많다. 더나아가 황 교수의 말이 진실이라고 믿는 이들은 서울대 조사조차 거짓이라고 판단하거나, 논문 조작은 중요한 게 아니라고 주장하거나, 왜곡된 사실을 주장하기도 한다. 도대체 왜 그런 것일까. 카네만 교수는“사람은 원래 그렇게 합리적인 존재가 아니다”라고 말한다.
김희원기자 hee@hk.co.kr도움말 이정모 성균관대 심리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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