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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마 할퀸 대구 서문시장 가보니/ "금고 속 현금·통장 잿더미" 애타는 상인들 발만 동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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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마 할퀸 대구 서문시장 가보니/ "금고 속 현금·통장 잿더미" 애타는 상인들 발만 동동

입력
2006.01.05 11: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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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에 그을린 배관과 앙상하게 드러난 철근, 옆으로 무너져 앉은 지붕….’

한밤 중 화마(火魔)로 순식간에 삶의 터전이 사라진 대구 서문시장 2지구 건물은 화재 발생 일주일인 4일에도 ‘폐허’였다. 2지구와 바로 옆 주차빌딩 1층에는 ‘생존권 보장’을 외치는 성난 상인들이 소방차를 밖으로 몰아낸 채 철야농성을 벌이고 있다.

출입이 통제된 2지구 건물 주변에 삼삼오오 늘어선 경찰관들은 “금고와 거래장부를 가지러 가야 한다”는 상인들을 막느라 진땀을 흘리고 있었다. 건물 북편 쪽문 틈으로 불에 타지 않은 이불과 침대보 등을 헐값에 처분하는 상인의 어깨는 축 늘어져 있었다.

그나마 불에 타지 않아 출입이 허용된 지하1층 의류점에는 매캐한 냄새가 자욱한 가운데 널브러진 마네킹과 옷걸이를 헤집는 상인들 손길만 애처로워 보였다.

바닥에 물이 흥건한 지하1층을 둘러보던 숙녀복가게 주인 안명자(53ㆍ여)씨는 “불이 벽을 타고 내려오면서 옷이 모두 그을려 하나도 건질게 없다”며 허탈해했다.

대신소방파출소 김홍구(34) 소방사는 “2지구 상인이라는 신원확인을 거친 후 안전장비를 착용하고 우리들과 함께 현장을 둘러보고 있다”면서 “그들은 한결같이 고개를 저으며 발길을 돌리고 있다”고 말했다.

주차빌딩 곳곳엔 ‘화재는 관재(官災)다 정부는 보상하라’ ‘사랑하는 서문상가 우리 모두 함께 살자’라는 플래카드가 어지럽게 나붙어 있고, 수백여명의 2지구 상인들이 상기된 얼굴로 당국을 성토하고 있었다.

2층 점포에서 20여년간 메리야스를 팔아온 박명희(48ㆍ여)씨는 “상가 금고에 목걸이와 팔찌 등 패물에다 수표, 현금, 통장 등 재산을 보관하고 있었는데 모두 잿더미로 변했다”며 “화재 당일 ‘불길이 곧 잡힌다’는 소방관의 말만 믿고 금고를 가지고 나오지 않은 것이 후회스럽다”고 발을 굴렀다.

10개월된 아기를 업고 농성장 바닥에 앉아있던 이상숙(35ㆍ여)씨는 “월말에는 외상값을 받는 것이 관행이고 상인간에도 외상거래를 많이 해왔지만 장부가 불에 탔을 것 같아 걱정”이라고 하소연했다.

설 대목을 20여일 앞두고 주차빌딩을 임시상가로 사용하려던 2지구 상인들은 이날 오후 서문시장 상가연합회의 건물사용 불허 방침을 전해 듣고 격앙된 표정으로 반발했다.

2지구 화재수습대책위원회 정청호(58) 집행위원장은 “3일에는 6개 지구별 투표로 중 4대 2로 임시상가 사용을 승인했으나, 갑자기 2지구 상인 1,200여명을 제외한 회원투표를 통해 불허 결정을 내린 것은 이해할 수 없다”며 재투표를 촉구했다.

한편 대구시는 이날 화재로 잿더미가 된 서문시장 2지구를 ‘특별재난지역’으로 선포해 줄 것을 건의했다. 경찰은 아직 정확한 발화지점을 찾지 못한 채 현장감식과 목격자 등을 상대로 탐문수사를 계속하고 있다.

상인들의 애끓는 호소가 끊이지 않는 서문시장 입구에는 ‘버릴 것은 설마 의식, 가꿀 것은 소방 의식’이라는 플래카드가 나부끼고 있었다.

대구=전준호기자 jhjun@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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