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도하기란 “어떤 관념에 나쁜 이름을 붙이는 것”이다. 이름을 ‘붙이는’ 것일 뿐이므로 ‘증거’와는 관계가 없다. 그 이름은 애당초 ‘나쁜’ 것이기 때문에 그 관념을 거부하거나 비난하도록 만드는 데 사용된다.
영어로 여러 번역이 가능하겠지만 일상 구어로 표현하자면 name-calling이 가장 쉽다. 별명 같은 것을 부르며 놀리거나 조롱하고 모욕을 주는 것이 영어의 name-calling이다. 미국사회에서는 인종 차별이나 성 차별, 장애인 차별 만큼이나 금기시되고 있는 안 좋은 행위이다.
■매도하기의 대표적 예는 ‘테러리스트’라는 말이라고 학자들은 말한다. 어떤 사람에게 테러리스트가 다른 사람에게는 자유의 전사다.
의미론자들의 지적에 따르면 “우리가 한 개인을 지칭하는 것은 우리의 목적이나 투사(投射)나 평가에 달려 있지만, 우리가 명칭을 바꾼다고 해서 개인이 변하는 것은 아니다.” 테러리즘에 관한 저술로 유명한 크리스토퍼 히첸스는 “테러 행위가 어떤 특정한 종류의 행위를 가리키는 것인지, 아니면 그 행위를 하는 사람에 따라 정해지는 개념인지에 대한 의문을 던진다.
이런 견해에 따르면 지하조직원이나 자유의 전사나 테러리스트 중 무엇으로 불릴지는 명칭을 부여하는 사람의 견해나 그 사람이 지지하는 입장에 달려 있다. 셋 중의 누구이든 그 행동은 대체로 동일한 것이라고 전문학자들은 말한다.
■최근 미국 관리들이 북한을 비난하는 행위는 name-calling이라고 뉴욕타임스 사설이 비판했다. 6자회담의 중요성을 강조한 이 사설은 북한도 문제지만 미국의 문제도 마찬가지라며 “양 쪽 다 비난 받아야 한다”고 지적했다.
미국의 북한 비난은 우연한 표현 상의 문제가 분명 아니다. 알렉산더 버시바우 주한 미국대사가 북한에 대해 “범죄정권” “암울한 실패 정권”이라고 불러 파문을 불렀고, 제이 레프코위츠 북한인권특사는 “미국정부는 버시바우 대사의 입장을 번복할 의사가 없다”고 확인했다.
■뿐만 아니다. 로버트 조지프 국무부 군축차관이 “북한정권은 오래 견디지 못할 것”이라고 하자, 이어 조지 W 부시 대통령은 “북한은 핵 보유를 선언하고 위조지폐를 만들고 국민들을 굶주리게 하고 있다”고 직설적 비난을 재개했다.
일찍이 부시 대통령은 김정일 국방위원장에 대해 ‘폭군’이라고 부른 바 있었으나 다시 ‘Mr. 김정일’이라고 표현을 바꾸고 나서 지난해 9월 6자회담이 성사됐었다. 그 표현이 다시 바뀌자, 회담은 다시 속절없다. 표현 하나가 이렇게 중요하다. 당국자들의 표현은 그 자체가 정책이다.
조재용 논설위원 jaecho@hk.co.kr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