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종석 통일부장관 내정자는 그 동안 막후에서 대북 문제나 외교안보 정책의 조언자 역할을 했다면 이제부터는 무대 위의 주연 역할을 하게 됐다.
정동영 전 통일부장관처럼 외교안보 라인을 총괄하는 지휘자 수준은 아니더라도 상당한 영향력을 행사할 전망이다.
무엇보다 국가안전보장회의(NSC) 상임위원장을 이 내정자가 맡기로 한 점은 주목할 만 하다. 반기문 외교, 윤광웅 국방장관 등 외교안보 라인의 연륜과 무게를 고려, 내달 초 신설되는 청와대 안보정책실장으로 넘어갈 것이라는 예상도 있었지만 이 내정자의 겸임으로 결론이 난 것이다. 그만큼 노무현 대통령의 신임이 두텁다는 얘기다.
이런 맥락에서 이 내정자의 이념적 성향과 정책적 지향은 대단히 중요하다. 그가 참여정부 출범 이후 외교안보 정책의 설계를 쭉 담당해왔기 때문에 기존 기조에 별다른 변화는 없을 것으로 보인다.
정부의 한 인사는 “이 내정자는 이념적 성향의 인물이라기 보다는 실무형에 가깝다”며 “평소 이 내정자의 관심은 정책 목표를 이루기 위한 효율적인 수단을 강구하는데 있다”고 말했다.
2004년 초 ‘자주파 대 동맹파’(NSC와 외교부)간 갈등에서 이 내정자가 외교부나 국방부 관리들로부터 ‘자주파’로 낙인 찍혔고, 청와대 내 386세력으로부터는 ‘관료조직에 동화되고 있다’는 비난을 동시에 받았던 것도 그의 실용적 성향에서 연유된 것으로 보인다.
따라서 이 내정자는 한미동맹, 남북관계, 북핵 문제에서 갈등을 감수하면서까지 승부수를 던지기보다는 문제를 푸는 쪽에 역량을 집중할 것으로 예상된다.
물론 한미동맹 조정, 실용적 균형외교 추구 등으로 불거졌던 한미간 시각차가 완전히 해소되기 어려울 전망이다. 이 내정자는 평소 한미갈등에 대한 보도가 나올 때마다 “한미간에 국가이익이 일치할 수 없는 것이 현실인데 어떻게 견해차가 없을 수 있느냐”고 강조해왔다.
다만 정동영 전 장관에 비해 무게감이 약한 이 내정자가 전면에 나선 만큼 한미동맹에 관해 외교부와 국방부 등 정책집행부서의 입김이 보다 강해질 가능성은 있다.
남북관계의 환경은 새롭게 조성될 수 있다. 이 내정자는 북한을 집중 연구한 학자로서 국민의 정부 때부터 대북 포용정책에 깊숙이 관여했기 때문에 조언자가 아닌 정책집행자로서 새 접근방식을 부단히 구상할 것이다. 또한 이 내정자를 잘 알고 있는 북한 역시 이를 감안하는 화음을 낼 가능성도 있다.
그러나 이 내정자가 지니는 한계도 적지않다. 2004년 7월 정동영 전 장관이 취임하기 이전에는 NSC 사무차장인 이 내정자가 야당으로부터 모든 비난의 화살을 맞았다. ‘정동영’이라는 방패가 사라진 지금 과거의 상황이 재연될 공산이 크다. 외교안보 라인 내부적으로도 청와대 안보정책실장에 누가 임명되느냐도 이 내정자의 입지와 보폭에 상당한 영향을 미칠 것이다.
이영섭 기자 youngle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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