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의 공해가 난무하는 세태에 선가의 ‘무설설(無說說) 설무설(說無說)’의 법문은 말과 침묵의 관계를 새삼 일깨워준다.
깨달음의 경지에서 보면 말과 침묵은 서로 대립하는 개념이 아니다. 말이 곧 침묵이고 침묵이 곧 말인 것이니, 말이란 말하지 않는 가운데 말함(無說說)이요, 침묵이란 말하는 가운데 말하지 않음(說無說)이라고 옛 선사들은 일렀다. 말로 짓는 악업이 항하사(갠지스강)의 모래만큼 많고 수미산보다 높음을 일찍이 경계하는 말로도 해석되는 법문일 것이다.
그래서 노자(老子)는 “진실로 아는 자는 말하지 않고(知者不言ㆍ지자불언) 말을 하는 자는 진정으로 아는 것이 아니다(言者不知)” 라고 했나 보다.
연초가 되면 소위 우리 사회의 지도층이라는 사람들은 고사성어(또는 사자성어)를 빌려 소망을 이야기한다. 좋게 말하면 사회를 향한 그들 나름의 화법인 셈이다. 그러나 어딘지 모르게 공허하게 느껴지는 정치인들의 말과는 달리 전국의 교수들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실시해 선정하는 교수신문의 새해 화두는 많은 사람의 마음을 어루만져주곤 한다.
교수신문은 2일 새해의 소망을 담은 사자성어로 약팽소선(若烹小鮮)을 선정했다. 노자에 나오는 이 사자성어는 치대국약팽소선(治大國若烹小鮮)의 준말이다.
노자는 이처럼 “큰 나라 다스리기를 작은 생선 삶듯 하라”고 가르쳤다. 작은 생선을 요리할 때 너무 휘저으면 본래의 모습이 망가지게 마련이다. 마찬가지로 세세한 법을 만들고 법령을 자꾸 바꾸는 유위(有爲)의 다스림은 백성을 괴롭히거나 혼란만 부를 뿐이다. 그래서 노자의 무위이치(無爲而治)를 가리켜 민주정치의 전형이라고 하는 지도 모른다.
김승규 국정원장은 2일 신년사를 통해 “직원 각자가 극세척도(克世拓道)의 자세로 국익증진과 안보수호를 위한 첨병으로서 헌신해 달라”고 당부했다. 김 원장이 제시한 극세척도의 사자성어는 어떤 어려움도 이겨내고 새로운 길을 개척한다는 의미다. 도청파문으로 얼룩진 지난해의 아픔을 극복하자는 의지도 담겼을 것같다
이병완 대통령비서실장은 앞서 천지교태(天地交泰ㆍ하늘과 땅이 화합하여 태평하다)를 새해 화두로 소개했다. 태괘(泰卦)는 주역 64괘 가운데 가장 이상적인 내용으로 구성돼 있다.
하늘의 마음과 땅의 마음이 서로 화합하여 소통하기 때문이다. 교수신문이 지난해 우리 사회의 상징어로 정한 상화하택(上火下澤ㆍ 서로 반목하고 분열하다)을 염두에 둔 선택으로 보인다.
상화하택은 물과 불처럼 서로 화합을 하지 못하고 갈등을 빚어온 우리의 모습을 그대로 담고 있는 사자성어다. 위로는 불이, 아래로는 물을 가리키는 연못이 서로 반목하고 등지고 있는 형국이다.
그 반대의 모습이 상택하화(上澤下火)이다. 연못이 위에 있고 불이 아래에 있는 이 괘는 혁괘(革卦)이다. 혁괘는 변혁 이후 신뢰를 얻는다는 뜻을 갖는다. 서로의 다름을 인정하면서 변화와 성숙의 길을 모색하는 상택하화의 한 해가 되기를 모든 국민은 바란다.
정세균 열린우리당의장은 새해 첫날 4ㆍ19 묘역을 참배한 뒤 ‘군자처럼 말은 둔해도 행동은 민첩하게 한다’는 의미의 눌언민행(訥言敏行)을 새해의 다짐으로 내놓았다. 공자는 “군자는, 언어에는 둔하여도 실천하는 데는 민첩해야 한다”라고 가르쳤다. 말만 번드르르하고 실천은 외면하는 사람에 주는 충고다.
한편 기업체 최고경영자들은 지난 한해 우리 경제계를 대표하는 상징어로 운니지차(雲泥之差)의 사자성어를 꼽았다. 삼성경제연구소가 구랍 31일 국내 여러 기업 임원 420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에 따르면 응답자 5명중 한 명 꼴로 운니지차를 꼽았다.
하늘과 땅 차이라는 뜻만큼 양극화로 치닫는 우리 경제와 빈부갈등을 대변하는 말이 아닐 수 없다. 진대제 정보통신부장관은 지난해 정보통신업계의 상황을 ‘숙아유쟁(熟芽遺爭)’의 사자성어로 정리했다. 그의 주장에 따르면 싹을 틔웠으나 논쟁거리는 아직 남아 있다는 뜻이라고 한다.
뭐니뭐니 해도 고사성어 정치의 달인은 김종필 전 자민련총재다. 그는 40년 가까이 2인자의 자리에 있으면서 상황에 따라 고사성어를 빌려 자신의 심경과 처지를 세간에 전했다. 그의 좌우명은 상선여수(上善如水)라고 한다.
노자는 “최고의 선은 물과 같다. 물은 만물을 아주 이롭게 하면서도 다투지 않는다(上善若水 水善利萬物而不爭ㆍ상선약수 수선이만물이부쟁)”고 말했다.
신라의 선지식 원효대사는 위관규천(葦管窺天)의 사자성어로 왕실과 벼슬아치를 일깨우곤 했다. 위관규천은 갈대구멍으로 하늘을 보는 어리석음을 빗댄 말인데 그런 행위를 관견(管見)이라고 한다.
관견을 지닌 정치인 관료 경제인 언론인들이 나라를 망친다. 그들은 편견과 차별이 없는 푸른 하늘마저 조각조각 찢어발겨 저마다 자기에게 이롭거나 유리하게 쓰는 짓을 일삼는다. 정치인들의 새해 다짐을 듣는 국민들은 위관규천의 자세를 버리라고 주문하고 있다.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