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경찰은 위기에 처해있다. 그 위기는 과거 고문과 부패 사건 등이 발생했을 때와는 사뭇 성격이 다르다. 과거 경찰 문제로 국민이 우려하고 분노했을 때 다수 경찰관은 그 우려와 분노에 공감하고 부끄러움과 자성의 마음을 공유했다. 하지만 지금 경찰 조직은 정권과 정치권, 언론 및 검찰 등 외부 환경에 대한 불만과 분노로 뒤숭숭하다.
2명의 농민이 시위과정에서 사망하자 경찰청장이 임기의 반도 채우지 못하고 정치권과 여론의 압박에 밀려 사퇴를 한 데다, 수사구조 개혁을 주장하며 검찰의 지시나 요구를 거부한 경찰관들이 줄줄이 검찰에 소환되어 형사 입건되는 고초를 겪고 있기 때문이다.
더구나 일선 경찰관의 인사 문제 해결과 순직자 보상책을 마련하기 위해 어렵게 성안된 경찰공무원법과 순직공무원보상법 개정안은 국회에서 처리가 계속 지연되고 있다.
●처우개선법안 처리 지연
연말 격무에 지친 40대 형사가 과로로 순직했으나 20년 근속 기준에 조금 모자라 장애인 아들을 포함한 가족은 연금도 한 푼 받지 못하고, 시위대의 돌과 죽창, 화염병에 중상을 당한 전ㆍ의경과 경찰관이 경찰병원 병상을 가득 메워도 사회지도층 누구 하나 위로나 문안이 없다는 현실도 경찰관들의 마음을 어지럽히고 있다.
특히 과거와 달리 국민이 사랑하고 지지하는 경찰이 되겠다며 내부를 공개하고 문제를 드러내 과감한 개혁을 해 나가고 있고 치열한 경쟁을 뚫고 들어온 당당한 젊은 경찰관들에 의해 깨끗하고 합리적인 조직으로 변해가던 상황이라 더욱 그 위기감은 크게 느껴진다.
우선 시위 농민 사망사건을 경찰청장 사퇴를 통해 정치적으로 해결해 넘기겠다는 구태 답습이 문제다. 농민 시위의 원인과 폭력시위 문화 문제는 논외로 하더라도 경찰의 시위 대응 무엇이 문제인지를 파악하고 이를 해결하겠다는 정직하고 성실한 태도는 발견할 수 없다.
20세기 초 영국과 미국 등에서 경찰관의 폭력으로 시위대나 피의자가 사망하는 사건이 발생했을 때 이들의 대응은 조사위원회 구성을 통한 철저한 실태조사와 문제 파악에 뒤따른 법제도 개혁이었다.
직접적인 책임을 져야 할 이유가 발견되지 않는 치안총수를 임기 중에 내모는 사회에서는 정상적인 치안정책의 수립과 시행을 기대할 수 없다.
오히려 우리가 주목해야 할 것은 경험과 기술이 부족한 젊은 전ㆍ의경을 시위진압의 일선에 내모는 법제도의 후진성과 폭력시위를 해야 언론의 주목을 받는다는 시위단체 대표의 주장이 공감을 얻는 사회분위기다.
60년 동안 경찰 자질 문제를 이유로 저당 잡아두었던 수사권을 돌려달라는 경찰의 요구가 점차 사회의 지지를 얻자, 다양한 수단과 방법으로 경찰을 공격하고 비하하는 검찰의 조직이기와 경찰의 수와 검찰의 권력 사이에서 이해타산을 따지는 정치권의 어정쩡한 태도 역시 문제의 일부이다.
경찰에 문제가 있다면 그 문제를 제대로 찾아내 개혁하고, 부패하고 권력을 남용하는 경찰관이나 불법을 요구하는 지휘관이 있다면 그들을 적발해 처벌하되 경찰조직과 경찰관에게 부여해야 할 권한과 처우는 보장하라는 것이 다수 경찰관의 요구이며 그 요구는 정당하고 당연하다.
●정치적 미봉책 더는 안돼
1919년 미국 보스턴, 1920년 영국 런던, 1923년 호주 멜버른에서 경찰관들이 파업을 한 뒤 경찰노조가 허용되거나 경찰의 위상과 처우가 강화되었다. 하지만 경찰파업으로 발생한 폭동과 약탈, 파괴의 피해는 고스란히 국민의 몫이었다.
우리가 미국 등의 80년 전 상황과 같다고는 할 수 없다. 하지만 정직하고 성실하게 문제를 직시하지 않고 적당한 정치적 술수와 언론플레이로 위기를 넘기고 이익을 지키겠다는 태도는 더 큰 혼란을 부를 뿐이다.
흔들릴 대로 흔들린 경찰의 안정과 개혁, 국민의 안전과 평안을 위해서도 더는 미룰 수 없다.
표창원 경찰대 행정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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