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부분의 사람들은 새 해를 맞이하면서 한두 개씩 다짐을 한다. 담배를 끊겠다든지, 아침운동을 거르지 않겠다든지, 외국어 하나를 배우겠다든지, 아님 결혼을 하거나 집을 장만하겠다든지.
지난 한 해를 정리하면서 아쉬웠던 부분들을 채워 넣고자 하는 마음은 누구나 마찬가지이리라. 각 신문사와 방송사들도 새 해 맞이에 나름대로의 의미를 부여하며 2006년을 시작했다.
신년 사설은 신뢰, 상식, 포용, 원칙, 경험 등의 단어로 메워져 있고, 방송사들은 따뜻함, 여성, 미래 등을 새 해의 키워드로 삼았다. 모든 신문, 방송사들이 그 초심을 잃지 않고 올 한 해 꾸준하게 소임을 다하기를 기원한다.
하지만 기대의 이면에는 우려도 있다. 금연의 다짐이 사흘만에 수포로 돌아가는 예가 허다하듯, 언론사들의 다짐도 금세 시들어버리지 않을까 지레 걱정이 된다.
신년사설이나 특집 기획만을 제외하면 새 해의 기사라고 크게 다른 것이 없기 때문이기도 하다. 각 방송사들은 약속이나 한 듯 대통령과 서울시장 (잠재)후보에 대한 여론조사를 실시하였다. 선거를 한참이나 앞둔 시점부터 지겹게 반복되어온 조사결과를 다시 한번 봐야하는 고충은 한 해를 시작하는 경건함을 훼손시키기에 충분했다.
누가 앞서고 누가 역전했고 누구는 탈락했고 하는 이 경마식 보도의 유혹을 과감하게 털어버릴 수는 없었을까? 더구나 새 해 첫날 말이다.
신문사들 역시 크게 다르지는 않았다. 특히 눈에 띄는 것은 조선일보와 동아일보의 신년사설이다. 과거에 얽매이지 말고 빨리 앞을 향해 나아가자는 조선일보와 낡은 보수나 수구 좌파를 몰아내고 21세기형 선진 패러다임을 가시화하자는 동아일보의 지향 자체가 문제시될 이유는 없다.
그러나 세계 역사 어디에도 과거를 바로 세워 현재와 미래를 일으켰던 나라는 없다며 ‘과거를 바로 세워야 미래가 바로 설 수 있다’는 말에 대한 논란을 뒤로 미루자는 제안(조선)이나 대한민국 체제를 흔드는 세력에 끝까지 맞서겠다는 결의(동아)는 미래라는 옷을 입힌 보수의 모습이다.
지방선거에서도 “우리의 발길을 과거로 잡아 돌리려는 세력이 누구인가를 꿰뚫어보아야”한다고 일갈하는 모습은 ‘희망’을 논해야 할 신년사설 치고는 너무 전투적이다.
더구나 조선일보가 신년 첫 신문에 실은 르포기사는 말 그대로 구습의 관성이 지배한 결과물이었다. ‘과학 한국의 심장은 여전히 뛰고 있다’는 부제로 포항공대의 한 연구실 모습을 스케치한 이 기사는 정작 연구실 사람들에 의해 반박되어 오마이뉴스에 보도되었다.
연구원들을 황우석 사태가 뭔지도 모르는 사람처럼 묘사하고, 보지도 않은 사실을 “오전 5시가 돼서야 불이 꺼졌다”는 식으로 표현하는 것 모두 늘 해온 관성이 아닐까?
연예인 기사는 적당히 각색해도 되고 미담기사는 적당히 부풀려져도 되고 이같은 르포기사는 적당히 과장해도 된다는 안이함. 새 시작을 알리는 첫 날 ‘한국의 미래’를 보여준다는 기사가 정작 과거의 안이함을 반복한다는 것은 또 다른 ‘우려’의 이유이다.
금연이나 집 장만같은 가시적 목표를 세우는 사람도 있지만 ‘올해만큼은 정직하게 살자’라는 식의 다짐으로 한 해를 시작하는 사람도 있다. 지난해에 대한 반성 위에서 내일을 다짐하는 것이다.
신문사, 방송사들도 우선 철저한 반성을 먼저 하는 편이 낫지 않았을까 생각해본다. 독자와 시청자와 사회를 향해 포용하고 배려하고 원칙을 지키자고 주장하기 이전에 2005년 저질렀던 실수와 오류를 스스로 인정하고, 그 위에서 올해에는 정말 신문다운 신문, 방송다운 방송을 만들겠다고 다짐했더라면 훨씬 더 믿음이 갔을 듯 하다.
그러고 보니 이 글을 쓰고 있는 나 역시 별 자성도 성찰도 없이 신문사, 방송사만 훈계하는 꼴이다. 지난 1년간 쓴 칼럼들을 다시 꺼내 읽었다. 시간에 쫓겨 허투루 쓴 글도 보이고, 조심스레 쓰느라 정작 무슨 이야기인지 애매한 글도 보인다. 우선 반성하고, 올해만큼은 반성할 필요 없는 글을 쓰겠노라 다짐을 한다.
/연세대 영상대학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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