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사동 경복궁 주변을 지날라치면 지도를 들고 씨름하는 외국인을 자주 만나게 된다. 도움을 주려고 다가가 알아보면 찾는 곳을 바로 옆에 두고 “여기가 어디지요(Where am I?)”하고 묻는 경우가 적지 않다. 인사동과 접한 안국동 로터리 주변에서조차 코앞의 인사동 입구를 찾지 못해 엉뚱한 골목을 기웃거리는 외국인을 자주 만나게 된다.
처음엔 유난히 길눈이 어두운 사람인가보다 여기고 지나쳤으나 이런 외국인이 의외로 많은 데 놀랐다. 그래서 도대체 왜 코앞의 인사동이나 경복궁을 찾지 못하나 궁금해 심실풀이 삼아 주변을 답사해 보았다.
■ 이 곳 지리에 밝지 않고 한글을 읽지 못하는 외국인의 입장에서 돌아본 결과는 충격이었다. 지도만 들고 목적지를 찾는 것 자체가 불가능했다. 도로변 안내표지판에 길 이름은 친절하게 표시되어 있으나 정작 낯선 외국 관광객에게 필요한 주요 관광지로 가는 길을 안내해주는 표시는 없었다.
인사동을 가려 해도 부근 지하철역과 지하도에만 표시가 있을 뿐 대로에서는 안내표시를 찾을 수 없었다. 지형지물이 될 만한 건물 역시 지도에는 표시돼 있으나 실제 건물에는 이름이 붙어 있지 않거나 한글로만 돼 있어 외국인이 건물을 식별해 위치를 파악하는 것이 불가능했다.
■ 서울의 주소체계는 복잡하고 요령부득하기로 소문나 있다. 토박이가 아니고서는 동네 주민이라 해도 외부인이 내미는 주소를 제대로 안내해주기 어렵다. 정부는 1996년부터 토지 지번을 중심으로 돼 있는 기존 주소체계를 도로이름과 건물번호를 결합한 서구형 주소체계로 바꾸는 사업을 추진 중이다.
서울은 주소체계 변경이 거의 완료됐고 농촌지역도 2009년이면 새 주소체계로 바뀐다. 이에 따라 골목마다 새로운 길 이름이 붙고 건물마다 번호가 매겨졌으나 기존 주소체계와 혼용되면서 집배원들이나 물류업자들도 골탕을 먹는다고 한다.
■ 동북아의 문화 허브를 외치며 외국인관광객 유치에 아무리 열을 올려도 가장 기초적인 주요 관광지의 길 안내가 이 정도라면 부끄럽다. 우리나라 수도의 대표적 관광지로 하루에 수천명의 외국인이 즐겨 찾는 경복궁과 인사동이 이 정도라면 다른 관광지는 물으나마나다. 엊그제 600만 명째 방한한 외국인 관광객을 환영하는 행사도 있었다.
많은 관광객이 찾아오는 것도 중요하지만 우리나라를 찾은 관광객이 불편하지 않게 주요 관광지를 쉽게 찾아 볼 수 있도록 안내표지판부터 정비하는 것이 문화 허브의 첫 걸음이 아닐까.
방민준 논설위원실장 mjbang@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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