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해 벽두, 러시아와 우크라이나의 천연가스 분쟁이 국제뉴스 첫머리에 올랐다. 러시아 국영가스회사 가즈프롬(Gazprom)은 새해부터 가스 공급가격을 5배 가까운 수준으로 올리겠다는 통고를 우크라이나가 외면하자 1일 가스 공급을 전면 중단했다.
이 전례 드문 분쟁은 단순한 가격 다툼이 아니라 우크라이나의 러시아 영향권 이탈을 견제하려는 전략적 파워 플레이로 풀이된다. 이에 따라 21세기 국제질서를 지배할 ‘자원 전쟁’의 단적인 사례로 인식되면서, 유럽과 국제 사회에 비상한 관심과 경각심을 불러 일으켰다.
●천연가스 무기 삼은 전략적 다툼
러시아는 지금까지 1,000 입방미터에 50 달러씩 받던 천연가스 가격을 국제 시장가격 255 달러에 근접한 235 달러로 올리려는 것이라고 주장한다. 그러나 유라시아 일대 천연가스 공급을 거의 독점한 가즈프롬의 조치는 우크라이나 소비량의 30%를 공급하는 천연가스를 무기 삼아 급속한 친서방화를 저지하려는 정치적 포석으로 해석된다.
가즈프롬은 러시아 영향권에 충성스레 머물고 있는 벨로루시에 대해서는 47 달러의 특혜 공급가격을 유지하고 있다. 또 카자흐스탄 등 중앙아시아 국가는 110 달러, 발트 연안국은 120 달러씩 받는 것에 비춰봐도 정치적 의도가 뚜렷하다는 지적이다.
소련 해체 뒤 러시아와 갈등을 되풀이한 우크라이나는 1년 전 ‘오렌지 혁명’을 통해 서방 지원을 받은 유센코 정권이 들어선 뒤 독자 행보를 확대했다. 러시아와의 정치군사적 유대를 줄이는 동시에 유럽연합(EU)과 우호협력관계를 넓혔다. 특히 미국과 나토(NATO)동맹 가입까지 논의, 러시아의 경계심을 결정적으로 자극했다.
러시아가 가스공급 중단을 전략적 압박수단으로 택한 것은 유럽도 우크라이나를 지나는 가스관을 통해 가즈프롬의 천연가스를 공급 받기 때문이다.
이번 사태로 당장 헝가리 폴란드 오스트리아 슬로바키아 등의 가스 공급이 20% 가량 감소했다. 가즈프롬은 우크라이나가 가스를 몰래 빼낸다고 주장하지만 가스관 압력이 떨어진 탓으로 보인다. 최대 수입국인 프랑스와 독일 등도 사태가 장기화하면 영향을 받지 않을 수 없는 처지다. 이에 따라 한겨울 에너지 비상사태를 맞을지 모른다는 불안감이 확산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우크라이나는 뜻밖에 강경한 자세를 보이고 있다. 서유럽 행 가스공급을 막고, 러시아 해군의 흑해 군항 이용을 중단시키겠다는 위협으로 맞서고 있다.
이런 강경 대응은 서유럽과 미국이 개입, 사태를 해결해 줄 것이란 기대와 자신감이 바탕이라는 풀이다. 주목할 것은 러시아의 주된 목적도 유럽과 미국에 러시아 영역 침탈을 자제하라는 강력한 경고를 보내는 데 있다는 지적이다. 분쟁의 핵심은 러시아와 서구의 갈등이라는 얘기다.
이번 사태가 극한 대결로 치달을 가능성은 크지 않다. 그러나 일부 전문가는 에너지 무기가 냉전시대 핵 위협보다 무섭다는 것을 확인시킨 사건으로 규정한다. 서유럽과 미국은 우크라이나가 국제 가격을 지불하는 부담을 대신 떠안거나, 러시아의 영역존중 요구를 웬만큼 수용해야 할 것이란 전망이다. 서방도 나름대로 압력을 동원하겠지만 타협이 불가피하다는 것이다.
●에너지 안보 중요성 새삼 일깨워
미국의 국제안보 전문가 마이클 클레어는 2001년 발간한 저서 ‘자원 전쟁’(Resource Wars)에서 21세기 초반 세계는 이념 대신 자원을 둘러싼 분쟁에 매달릴 것으로 내다봤다. 냉전 종식으로 열린 새 지평을 평화와 협력 대신 석유를 비롯한 자원을 차지하려는 다툼으로 채울 것이란 경고다.
그 경고는 아프가니스탄과 이라크 전쟁으로 현실화했고, 중동과 중앙아시아 등의 에너지 자원을 확보하려는 전략적 다툼은 날로 치열해지고 있다. 2006년 새해가 천연가스 분쟁으로 시작된 것은 에너지 안보가 한층 절박한 과제가 되고 있음을 일깨운다.
강병태 논설위원 btkang@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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