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도체, 휴대폰 등 한국의 주력 수출상품 대부분이 국제시장에서 극심한 경쟁이 벌어지는 ‘레드 오션(Red Ocean)’ 품목에 편중됐으며, 이에 따라 최근 15년간 우리나라의 경제성장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가운데 가장 심하게 ‘외화내빈(外華內貧)’이었던 것으로 분석됐다.
2일 재정경제부가 지난해말 OECD가 펴낸 영문보고서를 번역해 내놓은 ‘2005년 OECD 한국경제 보고서’에 따르면 1990년 이후 2004년까지 OECD 회원국의 ‘표준 국내총생산’(GDP)과 교역조건 변화를 감안한 ‘구매력 GDP’(Command GDP)의 차이를 분석한 결과, 한국은 두 지수간 누적 격차가 10%포인트로 30개 회원국 중 가장 높았다. 이 같은 추세는 2005년에 더욱 심화, 올해에는 그 격차가 3%포인트 안팎에 달할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표준 GDP’가 ‘구매력 GDP’보다 크다는 것은, 대외적으로 발표되는 GDP 성장률과 국민들이 체감하는 성장률 사이의 괴리가 크며 그만큼 외화내빈의 경제성장을 하고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우리나라 다음으로는 핀란드(5.1%포인트)와 일본(4.7%포인트), 스웨덴(4.5%포인트) 등이 2, 3, 4위를 차지했으나, 격차 규모는 우리나라에 크게 미치지 못했다. 미국(-0.3%포인트) 독일(-1.3%포인트) 노르웨이(-9%) 등 16개 회원국은 구매력 GDP가 오히려 표준 GDP를 능가, 해당국 국민들의 생활형편이 지표 흐름보다는 높은 것으로 추정됐다.
한국의 ‘외화내빈’ 현상은 주력 수출상품인 반도체나 휴대폰 등이 경쟁이 없는 ‘블루 오션(Blue Ocean)’ 영역이 아니라 경쟁이 심한 ‘레드 오션’에 속하기 때문이라고 OECD는 설명했다. OECD는 “한국은 반도체나 무선통신과 같은 핵심 첨단기술 쪽에 집중하고 있는데, 문제는 다른 국가도 이 분야의 생산을 확대해 교역조건이 악화한다는 점”이라고 설명했다.
국제 경쟁이 심한 한국의 주력 수출품은 매년 가격이 떨어지는 반면, 수입품 가격은 전년 수준이거나 오히려 올라가기 때문에 수출이 큰 폭으로 늘어도 국민들의 생활수준은 나아지지 않는다는 것이다.
실제로 OECD는 “정보기술(IT) 분야가 한국의 제조업 생산성 수준을 연간 1% 가량 높이고 있으나, IT분야에서의 교역조건 악화로 연간 0.7% 소득을 깎아먹는 효과가 나타나고 있다”고 지적했다.
전문가들은 특정 산업에 대한 지나친 의존 구조를 개선하는 한편, 우리나라가 독점적 위치를 차지하는 분야에 대한 수출을 늘리는 것이 급선무라고 진단했다.
또 기존 GDP 위주의 경제정책 대신 교역조건 변화와 그에 따른 실질소득 추이를 감안한 정책대응이 필요하다고 밝혔다. 한 민간연구소 관계자는 “미국이 ‘구매력 GDP’와 같이 실질소득 측정지표를 공식적인 성장률 보조지표로 활용하는 것도 이 때문”이라고 말했다.
조철환 기자 chcho@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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