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를 정도 경영, 투명 경영의 원년으로 만들겠습니다.”
이지송(66) 현대건설 사장은 최고경영자(CEO)가 기업의 운명을 어떻게 바꿔나갈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CEO 가운데 한 명이다. 난파 직전에 있던 ‘현대건설호’의 키를 잡은 지 올해로 꼭 3년. 앞만 보고 달려온 그의 얼굴에 검버섯이 늘었지만, 이 사장은 자타가 공인하는 한 가지를 이뤘다. 바로 현대건설에 ‘회생과 도약’이라는 희망의 불씨를 지펴놓은 것이다.
“현대건설은 이제 재도약의 토대를 마련했습니다. 올해에는 국내시장을 뛰어 넘어 세계 최고의 기술력과 경쟁력을 가진 ‘월드 베스트 건설사’로 거듭날 겁니다. 그리고 시대적 요구인 정도 경영을 반드시 실천하겠습니다. 국민기업 현대건설의 변신을 성원하며 지켜봐 주십시오.”
이 사장이 뿜어내는 자신감은 지난해 이룬 놀라운 실적이 뒷받침하는 것이다. 지난해말 이 사장은 ‘현대건설의 3대 기적’을 한꺼번에 이뤘다. 20년간 미완의 과제이던 충남 서산 간척지(473만평)를 기업도시로 탈바꿈시켜 ‘금싸라기 땅’으로 만들었다. 기업도시 1차 선정에서 보류되자 이 사장은 ‘유사시 226만평 농지 전환’이라는 히든 카드를 꺼내 일을 성사시켰다.
또 모두 불가능하다고 하던 이라크 공사 미수금 문제도 각고의 공을 들인 끝에 14년 만에 원금에 육박하는 6억8,400만 달러를 받게 되는 쾌거를 올리며 해결했다.
여기에 사상 최대 해외공사 수주액 달성, 경상이익 흑자규모 확대 등의 실적으로 사실상 워크아웃에서도 졸업했다. 이 같은 겹경사에 가려 ‘연초 대비 주가 3배 급등’, ‘매출 초과 달성’ 등의 연말 성과는 오히려 빛이 바랜 듯한 느낌마저 들게 했다.
“우연인지 모르겠지만 3년 전 취임하며 내걸었던 3대 과제가 지난해 말 한꺼번에 이뤄졌습니다. 제 스스로도 믿기 힘든 기적이 일어난 겁니다. 결코 노력만으로는 있을 수 없는, 하늘의 도움이 있었기에 가능했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이 같은 성과는 저절로 이뤄진게 아니다. 현대건설 전체 구성원의 뼈를 깎는 노력과 처절한 인내가 있기에 가능했다. 실제 이 사장을 지켜본 사람들은 일에 대한 그의 열정과 집요함에 혀를 내두른다.
해외영업통 답게 그에게 있어 국내외 주요 공사 수주는 모든 것에 우선하는 일이다. 시차가 있는 외국에서 공사 입찰이 있으면 3~4일 전부터 현장과 핫라인을 연결, 상황을 보고 받으며 전략을 세우느라 사장실에서 밤을 지새우기가 일쑤다. 새벽녘, 수주가 확정된 뒤 눈을 비비며 사장실을 나서는 그의 모습은 이제 직원들에게 그리 낯선 일이 아니다.
“솔직히 제 개인 회사였다면 이렇게까지 하진 못했을 겁니다. 국민기업으로 탈바꿈한 현대건설을 다시 살리는 것은 임직원, 더 나아가 우리 사회와 국가 경제에 이바지 할 수 있는 길이라는 나름의 사명감이 있었기에 가능했습니다. 현대건설은 제 자신과 가족이 삶을 영위해온 터전입니다. 제가 보답할 수 있는 길은 이것 뿐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는 열정 못지 않게 치밀함도 갖춘 CEO다. 전문경영인 답게 회사의 세부 프로젝트까지 꿰뚫어보고 있다. 30년을 일한 경험에다 특유의 부지런함과 욕심까지 가세, 회사 경영 상황을 손바닥 보듯 알고 있다. 그래서 현대건설 임직원들은 “사장 결재가 제일 힘들다”고 말하곤 한다.
“결재를 받으러 온 직원들은 그 일을 몇 달간 검토했으면서, 제게는 단 1분 안에 결정하라고 요구 아닌 요구를 합니다. 하지만 자칫 CEO의 잘못된 결정은 돌이킬 수 없는 낭패를 부를 수 있습니다. 그래서 결재가 올라오기 전 미리 내용을 파악해 두려고 노력합니다. 그것이 습관이 되다 보니 의도와 다르게 깐깐한 CEO로 소문이 난거구요.”
이 사장은 털털하고 마음씨 좋은 촌부(村夫) 같은 인상처럼 인간적인 면모를 갖추고 있다. 그는 매일 아침마다 종로구 계동 현대건설 사옥 8개 층 전 사무실을 돌며 직원들과 스킨십을 갖는다.
회사에 경사가 있으면 시루떡을 돌리고, 동지에는 팥죽을 쑤며, 설날에는 떡국을 끓여 직원과 함께 나눠먹는 것을 최고로 아는 촌사람이 바로 이 사장이다. 현대건설은 그런 진솔함과 순박함 때문에 이 사장을 깊이 신뢰하는 것인지도 모른다.
송영웅기자 herosong@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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