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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 신년특집-여성파워시대/ 性의 혁명…그녀, 모든 가능성을 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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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 신년특집-여성파워시대/ 性의 혁명…그녀, 모든 가능성을 품다

입력
2006.01.02 14: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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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바닥을 헤맬 때가 힘들어서 그렇지, 일단 능력을 인정 받고 난 다음부터는 ‘여자이기 때문에 불리하다’는 생각은 해본적이 없어요. 자리 잡기까지가 힘든 것은 남자도 마찬가지 아닌가요?”

데이콤의 여명희(40) 금융팀장은 인터뷰가 부담스러운 모양이었다. 그는 LG 계열사중에서 유일한 여성 재무총괄 책임자이다. 재무와 회계쪽에서만 17년 잔뼈가 굵었다.

꼭 LG가 아니더라도 국내 대기업에서 재무나 전략 분야의 여성 책임자는 희귀하다. 그러나 여 팀장은 ‘여자라는 이유만으로’ 주목 받는 것은 탐탁치 않다는 내색이다. “그냥 남자들과 똑같이 일했어요. 결산 시기가 되면 똑같이 밤늦도록 숫자와 싸웠고, 애 재우고 나서 집에서도 공부했죠.”

세무 공무원과 증권사 직원들을 많이 상대해야 하지만, 여자라서 힘든 적은 없었다고 한다. “여자들부터 ‘여자이기 때문에’라는 가정법을 버려야 할 것 같아요.”

#2. 작년 말 38대 1의 경쟁률을 뚫고 우리은행 신입사원 공채에 최종 합격한 안수연(28)씨. 대학원 졸업을 앞둔 작년 봄, 결혼식을 올려야 할 것인지 여부를 놓고 많은 고민을 했다. 가정이 딸린 주부의 신분으로는 일자리를 얻기가 힘들 거라는 걱정 때문이었다.

그래도 결혼부터 해치우고 취업하기로 결정했다. 한창 직장 일로 바쁠 때 결혼 준비하는 것 보다야 나을 거라는 판단이었다. 지원서에 기혼 여부를 적어야 하는 1~2개 회사에서 면접 기회조차 거절 당하기도 했지만, 결국 그 어렵다는 ‘금융 고시’를 통과했다.

안씨는 “기혼자라고 적어내면 놀라는 인사담당자도 있긴 했지만, 나이나 결혼 여부를 아예 묻지 않는 회사들이 점점 늘고 있어 다행”이라고 말했다. “결혼을 하고도 취업을 하겠다는 것은 그만큼 일에 대한 의지가 강하다는 얘기 아니겠습니까?”

여성단체들이 들으면 섭섭하겠지만, ‘여자라는 이유만으로’ 차별을 받는다는 얘기는 점점 설득력을 잃어가고 있다. 여자이기 때문에 직장에서 차별을 받고, 승진이 안되고, 취업이 안 된다는 논리는 일부 무능력한 여성들의 ‘핑계거리’로 일축되는 사회로 점차 접어들고 있다.

물론 여성 근로자들의 임금이 남성보다 낮고, 질 좋은 보육시설의 부족으로 여전히 여성들이 성공적인 직장생활을 해나가기에 불리한 현실임에 틀림없다. ‘조직에 대한 충성심이나, 일에 대한 책임감은 남자가 더 낫다’는 편견이 팽배한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또 하나 분명한 것은 이런 양성 차별적 인식이 엄청난 속도로 바뀌고 있다는 점. 여성들도 능력만 있으면 남성들과 같은 출발선, 같은 트랙에서 경쟁이 가능한 구조로 우리 사회가 급속히 재편되고 있는 것이다.

기업들의 채용관행이 ‘남성 위주’에서 ‘능력 위주’로 변화하고 있는 것이 대표적이다.

외환은행은 지난해 145명의 신입행원을 뽑았는데 55%가 여성이었고, 이중 8명은 주부였다. 20세 이상 대한민국 국민이면 누구나 응시할 수 있고, 철저히 블라인드 면접으로 선발했기 때문에 전업주부였던 여성들도 능력만 출중하면 뽑힐 수 있었던 것. 남자라고 해서 가점도, 주부라고 해서 감점도 없다.

한국은행도 작년 50명의 신입행원을 뽑았는데 여성의 비율이 34%(17명)로 사상최고 였다. 여성들의 성적이 훨씬 좋기 때문에 안 뽑을 수가 없었다는 설명이다.

통계청에 따르면 작년 1~11월중 월평균 취업자 수는 2004년보다 31만3,000명 증가했는데, 이중 여성이 17만 명으로 남성(14만3,000명)보다 많았다. 남자든, 여자든 앞으로는 ‘능력이 없다는 이유만으로’ 차별을 받는 것을 걱정해야 할 판이다.

직장에서 여자 상사가 늘어나고 남자 상사는 줄어드는 현상도 굳어지고 있다. 통계청이 대기업과 중소기업의 임원과 관리직, 국회의원, 지방의원 등 소위 고위직의 성비(性比)를 조사한 결과 여성들의 숫자는 작년 10월 기준으로 4만9,000명(전체의 8.6%)으로 2000년 3월(1만6,000명)에 비해 5년 여 만에 3배 이상 늘어났다. 반면 고위직 남성의 숫자는 2003년 1월(57만 명)을 정점으로 계속해서 줄고 있다.

여자 사장들도 늘고 있는데, 작년 9월 기준으로 근로자 1명 이상을 두고 있는 고용주(170만3,000명) 가운데 여성들은 35만3,000명으로 1년 전보다 8.1% 증가했다. 전체 고용주 가운데 여성이 차지하는 비중이 처음으로 20%를 넘어서기도 했다.

5명중 1명이 여자 사장인 셈이다. 끈끈한 인맥과 절대 근로량이 좌우하던 국내 산업이 창의성과 아이디어로 승부하는 구조로 변화한 데 크게 기인한 것이다.

이제 여자 상사-남자 부하, 여자 의원-남자 보좌관, 여자 사장-남자 직원의 구도에 대해 기분 나빠할 남자들은 별로 없다. 능력과 리더십으로만 윗사람을 평가할 뿐이다.

여성의 적극적인 사회진출은 그동안 사장돼 온 고급인력을 활용할 수 있게 된다는 점에서 사회 전반의 경쟁력과 생산성을 높이는 효과를 낳을 것으로 기대된다. 선진국 문턱에서 성장의 한계를 보이며 지척대고 있는 한국이 문턱을 넘어가는 열쇠는 여성인력 활용에 있다는 외국연구기관의 보고서도 있었다.

물론 그러기 위해서는 여성의 숫자보다 일하는 여성의 경쟁력 제고가 더 중요하다. LG경제연구원 송태정 박사는 “일하는 여성이 늘어나면 잠재성장률이 일단 높아지겠지만, 곧 한계에 부닥칠 것”이라며 “일하는 여성의 생산성을 높이는 게 더 중요하다”고 말했다. 여성의 손뿐 아니라 여성의 머리를 개발하고 활용하는 정책이 절실하다는 지적이다. 이는 정부와 기업의 책임이기도 하지만, 여성들의 몫이기도 하다.

유병률기자 bryu@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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