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4년 8월 우리나라 사법부 역사상 첫 여성 대법관으로 임명된 김영란(50) 대법관. 보수적인 남성 중심의 대법원에서 젊은 여성 대법관으로서 그의 지난 1년 4개월은 어떠했을까. 서울 서초동 대법원 집무실에서 재판기록에 파묻혀 있던 그는 기자의 방문을 반가워 하면서도, 언론의 끊이지 않는 관심이 다소 부담스러운 듯했다.
그럼에도 그가 잇단 인터뷰 요청을 거절하지 못하는 것은 아마도 남들이 밟지 못한 길을 가는 선구자로서 후배 여성들에게, 또 우리 사회에 할 말이 있기 때문일 것이다. 그는 인터뷰 내내 예의 소녀 같은 말투로 사소한 질문에도 마다 않고 답해줬다.
우선 대법관으로서 그의 하루는 어떨까. “출근해서 이메일 정도 체크하고 나면 하루 종일 기록에 묻혀 산다. 오전 내 읽고 식사하고 다시 기록을 보는 일상의 반복이다. 2주마다 한번씩 합의(대법관들이 모여서 사건에 대해 의견을 나누는 것)가 있을 때는 합의 준비를 해야 한다.
매일 퇴근하면서 사건기록을 집에 싸 들고 가는데, 그러지 않는 날은 불안할 정도다.” 대법관은 임명장 받는 날 하루 기쁘고 임기 내내 고행(苦行)이라는 말이 실감이 난다.
하지만 그는 “대법관 임명을 예상하지 못했던 터라 임명장 받는 날도 기쁨을 실감하지 못했다”고 했다. 대법관이 된 후 그는 일반 법관 시절 느끼지 못했던 점을 새삼 깨달았다. “대법관은 단지 어느 한쪽 당사자의 손을 들어주는 것으로 끝나는 게 아닌 것 같다. 대법관이 어떤 가치관과 세계관을 갖느냐가 중요하다.”
김 대법관은 여성 법관으로서 유리한 점이 적지 않다고 했다. “우리 사회에서 여성들은 성장과정에서나 아이를 키우면서 다른 사람의 의견을 많이 듣고 이해하는 능력을 얻게 된다. 여자라는 이유로 이런 저런 의사결정 과정에서 소외되는 경우도 많은데 이런 경험이 오히려 약자에게 귀를 기울이는 품성을 길러주는 것 같다.
나도 사회의 기준으로 보면 엘리트로 컸지만 여성으로서 남들에게 푸대접 받아본 경험, 아이 키우면서 느끼는 고통 이런 것들이 없었다면 사건 당사자들에 대한 이해의 폭이 좁았을 것이다. 여성으로 살아온 경험이 법관 생활에 자양분이 됐다.” 대개의 법관들이 학창시절부터 엘리트로 성장해 약자에 대한 이해가 부족하다는 지적을 받기 쉬운데, 여성으로서 차별적 경험이 스스로 편협한 엘리트주의에 매몰되는 것을 막아주는 장치가 됐다는 설명이다.
하지만 그는 여성으로서 단점도 얘기했다. “사건 당사자를 이해하고, 감정이입이 되다 보면 결론을 내리기가 어렵다. 재판업무는 당사자들의 주장을 100% 다 들어줄 수 없기 때문에 중간에 잘라야 하고, 판단해야 하는 작업이다. 대법관이 되기 전에는 법정에서 ‘내가 핵심을 알아들었으니 나머지는 글로 제출해달라’고 요구하기도 했는데, 주로 기록 검토만으로 진행되는 대법원 업무는 그럴 수도 없다.” 신중한 성품때문이 아니냐는 지적에 “좋게 말하면 그렇지만 가끔 나 자신에게 답답함을 느낀다”고 했다.
그는 법관이라는 특수한 신분 덕택에 조직 내에서 여성이라는 이유로 불이익을 받은 적은 없었다고 했다. 하지만 임신이나 육아 등에 대한 부담을 지면서 남성과 똑같이 일해야 한다는 것이 어려운 점이라고 말했다. “임신을 했을 때 끔찍한 살인사건 영장 심리를 맡아 시체사진까지 봐야 했는데, 이런 것도 배려를 안 해주는구나 생각한 적이 있다. 골프문화 등 남성적인 환경에 익숙하지 못한 점도 있었는데, 비단 법원 만의 문제는 아닌 것 같다.”
김 대법관은 최근 여성 법관이 급속히 증가하는 데 대해 매우 긍정적으로 평가했다.“여성들의 대화술, 소외된 집단에 대한 이해가 사법부 발전에 기여할 것이다. 여성 법관이 남녀 평등을 여는 선도적인 직업이 되었으면 좋겠다.”
신규 임용 법관의 절반이 여성이 될 정도로 여성 비율이 너무 높아지는 것을 우려하는 견해가 있다고 하자 김 대법관은 모처럼 목소리 톤이 높아졌다.
“여성들이 가장 분개하는 말이다. 많은 분야에서 여성들의 진입을 차단해 놓고, 능력 있는 여성들이 자신들에게 가능성이 열려있는 분야에 진출하기 위해 전력을 다하는 현상을 비난하는 것은 무책임하다. 법조계의 경우만 해도 판사직은 여성 비율이 높아지고 있지만 대형 로펌의 여성 변호사 비율은 매우 낮다. 많은 직종에 할당제를 둬서라도 여성의 비율을 높이는 것이 필요한 이유다.”
김 대법관은 “언젠가 한 강의에서‘여자인 것을 싫어하지 않았느냐’는 질문을 받았다”고 했다. “물론 저도 아이를 키우며 힘들고, 사무실에서 못하는 것 있으면 내가 여자라서 못하나 하는 콤플렉스를 느끼기도 했다. 하지만 나이가 들고 성숙해 지면서 여자여서 더 풍부한 삶을 살 수 있다는 걸 알았다.”
그는 “지금 단점으로 느껴지는 것이 나중에 자신을 풍요롭게 할 것이다. 여성 뿐 아니라 후배들이 자신의 약점에서 진리를 찾아가길 바란다”고 말했다.
▲ 김영란 프로필
김영란 대법관은 1978년 사법시험 20회에 합격해 서울민사지법 판사, 대법원 재판연구관, 대전고법 부장판사 등을 거쳐 2004년 48세의 나이에 대법관에 임명됐다.
경기여고 63회로 강금실 전 법무부 장관, 조배숙 열린우리당 의원, 노정혜 서울대 연구처장과 동기다. 수학과 물리학에 소질이 있어 고교시절에는 노 처장과 함께 이과 반이었다. 서울대 법대를 함께 다닌 강 전 장관은 가장 친한 친구 중 한 명이다. 김 대법관은 "서로 성격이 많이 다르지만, 그 점 때문에 더 좋아한다"고 말했다.
남편은 '청소년지킴이' 강지원(57) 변호사. 서로 칭찬을 아끼지 않는 부부로 유명하다.
김상철기자 sckim@hk.co.kr 이진희기자 river@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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