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남자는 지난해 초 잘 다니던 중소기업 직장을 그만두고 ‘집사람’이 됐다. 대학을 졸업하고 어렵게 구한 첫 직장. 거기서 보낸 3년 동안 결혼도 했고, 첫 아이도 낳았다. 공무원인 아내와 알콩달콩 맞벌이 하며 착실히 경력관리를 해나가던 그는 누가 봐도 믿음직스런 한 가정의 가장이었다.
그런 그가 2005년 1월 돌연 사표를 내던지고 아내를 대신해 가사와 육아를 떠맡았다. 부부 중 한 사람이 희생해야 하는 상황이 왔을 때 그 기준은 결코 성별이 아니라고 말하는 여찬혁(31)씨. 그가 전업 ‘주부(主夫)’의 길을 선택한 이유는 뭘까.
‘집사람’이 된 남편
30일 오후 경기 수원시 장안구 영화동의 한 연립주택.
이제 막 걸음마를 시작해 온 집안을 휘젓고 다니는 아들 하민(2)이를 좇아 여씨의 발걸음이 덩달아 분주하다. 설거지를 하다가 한 번, 청소기를 돌리다가 또 한 번. 종이를 찢어 먹고 장난감을 빨아대는 하민이를 향해 일손을 멈추고 달려가기를 반복한다.
여씨가 주부의 길을 생각하게 된 건 2004년 11월 첫 아이 하민이를 낳으면서부터. 친가와 처가 모두 아이를 키워줄 만한 여건이 되지 않아 아이 맡길 곳을 찾아 발을 동동 구르던 때다.
“처음엔 저희도 육아 도우미를 구하려고 했는데 믿고 맡길 만한 사람 찾기가 쉽지 않더라고요. 뉴스를 보면 온통 이상한 사람들뿐이고, 시설도 열악하기 짝이 없고…. 갓난아이를 그런 데 맡긴다는 건 부모로서 도저히 할 일이 아니다 싶어 용단을 내렸습니다.”
아내의 출산휴가가 끝날 즈음 여씨가 먼저 부인에게 살림을 맡겠다고 제안했다. 경기도교육청에 근무하는 여씨의 아내 이권구(31)씨는 올해 11년차 공무원으로 여씨보다 800만~900만원 정도 연봉이 많았다. 경제적인 측면에서 보면 여씨가 살림을 맡는 게 합리적인 결정.
“남자로서 쉬운 결정은 아니었어요. 하지만 아이가 어린이집에 갈 수 있을 때까지 한시적으로 하는 거니까 한 번쯤 해보는 것도 나쁠 건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2년 정도만 하겠다고 하니 다행히 양가 부모님 모두 반대하지는 않으셨어요.”
여씨의 결정에는 주부로 지내는 시간이 그동안 꿈꿔왔던 사회복지사로의 전업기회가 될 수 있으리라는 계산도 작용했다. “평생직장이라는 말이 무색해진 시대잖아요. 당장은 회사 다니는 게 그럴 듯해 보일지 몰라도 평생 직업을 찾아야죠.”
살림하는 남자의 애환
처음 두세 달은 가사일이 재미있었다. 하지만 매일 똑같은 일의 단순반복에 금세 싫증이 나고 말았다. 말로만 듣던 주부우울증도 찾아왔다. “매일 밖에 나가 활동하다 집에만 있으려니 적응이 안됐어요. 사람들을 만나도 집에서 애 키운다는 말을 하려면 도통 입이 안 떨어지기 일쑤고….” 우는 애를 1시간 넘게 들춰 업고 발을 동동거릴 땐 차라리 밖에 나가 돈을 버는 게 낫겠다는 생각이 저절로 들었다.
아내가 벌어오는 돈으로 생활하려니 눈치도 적잖이 보인다. “사고 싶은 건 사고, 먹고 싶은 건 먹는 편이었는데 저 자신한테는 돈을 잘 못 쓰겠더군요. 무슨 날 아내 선물을 해주려고 해도 아내가 벌어오는 돈이다 보니 머쓱할 때가 많아요.”
하지만 살림하느라 바빠 경조사 때나 가끔 만나는 친구들은 “좋겠다”며 속 모르는 소리를 많이 한다. 대뜸 전화를 걸어와 “너 집에서 노니까 시간 괜찮지?”라고 불러내는 친구들. “마누라 잘 만나 땡 잡았다는 말을 제일 많이 들었어요. 이 어려운 실상을 잘 몰라서 하는 소리니까 그냥 우스개로 넘깁니다. 그런 게 다 살림하는 남자의 애환이죠, 뭐.”
아내가 야속할 땐 ‘불량주부’로
오전 7시30분쯤 일어나 아침식사 등 아내의 출근준비를 도와주고 나면 장장 1시간에 걸친 ‘하민이 밥 먹이기 프로젝트’가 시작된다. 도망다니는 하민이를 따라 온 집안을 뛰어다니며 아침밥을 먹이고 나면 청소와 설거지가 기다리고 있고, 12시가 되면 점심을 먹으러 온 아내 식사를 챙겨준 후 2시간가량 하민이 낮잠을 재워야 한다. 이 때가 여씨의 유일한 자유시간. 그 시간 동안 인터넷 서핑 등을 하며 세상을 향한 끈을 놓지 않는다.
4시 반께 하민이가 잠에서 깨면 간식으로 사과 등을 갈아먹인 후 동네 시장으로 장을 보러 나간다. 한 팔로는 하민이를 안고, 다른 한 팔로는 장바구니를 들고 시장에 다녀오면 얼추 아내의 퇴근시간. 아내는 여씨가 준비해놓은 재료로 저녁식사를 준비하고, 여씨는 아이를 돌본다.
“솔직히 아내가 야속할 때도 있어요. 특히 요즘은 연말 송년회가 많아 아내의 귀가가 늦거든요. 저도 직장생활 할 때 굉장히 집에 늦게 들어오는 편이었는데도 그럴 땐 투정을 부리게 되더라고요.”
아내를 압박하기 위한 여씨의 시위 전술은 일명 ‘무기력하게 보이기’. 축 쳐진 모습으로 묻는 말에 대답도 없이 조용히 있으면 아내의 달래기가 시작된다. “제가 먹는 걸 좋아해서 야식에 약해요. ‘우리 치킨 먹을까?’ 하며 야식 시켜주면 금세 풀어痴?”
가정에서의 평등이 시작
여씨 부부는 2007년 둘째 아이를 가질 계획이다. 그때는 여씨의 아내가 1년간 육아휴직을 하고 아이를 돌보기로 했다.
“남편의 일, 아내의 일이 따로 정해져 있는 게 아니라 우리 부부의 일이 있는 거죠. 아내를 도와준다는 생각을 버리고 양육과 가사가 내가 해야 하는 내 일이라는 의무감을 좀 가져야 할 것 같아요.”
세상 모든 남편들이 6개월만 전업주부를 해보면 자녀와 배우자에 대한 태도가 확 바뀌어 가정의 평화와 평등은 저절로 이뤄질 거라고 말하는 여씨. 하민이 예방접종을 맞히기 위해 집을 나서는 그의 발걸음이 삭풍을 가를 듯 당당하고 활기차다.
박선영기자 aurevoir@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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