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는 재미의 발견

새로워진 한국일보로그인/회원가입

  • 관심과 취향에 맞게 내맘대로 메인 뉴스 설정
  • 구독한 콘텐츠는 마이페이지에서 한번에 모아보기
  • 속보, 단독은 물론 관심기사와 활동내역까지 알림
자세히보기
[미국의 동맹국들] (1) 폴란드 (상)
알림
알림
  • 알림이 없습니다

[미국의 동맹국들] (1) 폴란드 (상)

입력
2006.01.02 13:59
0 0

■ 시리즈를 시작하며

“영원한 동맹은 없고, 영원한 이익이 있을 뿐이다.” 19세기 초 나폴레옹 전쟁이 끝난 뒤 유럽 열강이 벌인 외교전을 가리키던 말이다. 요즘 우리나라에선 변질되는 한미동맹을 묘사할 때 종종 인용된다.

이 경구처럼 냉전 종식 후, 테러와의 전쟁을 거치면서 미국 동맹국의 면면이 바뀌고 있다. 일방주의 외교정책 그리고 이라크 전쟁을 계기로 독일과 스페인 등 전통적 동맹국들이 미국으로부터 멀어져 갔다. 캐나다처럼 미국에 안보를 의존하면서 미국에 반대하는 나라도 있다.

반면 미국이‘새로운 유럽’이라고 지칭하는 동유럽에선 신흥 맹방들이 부상하고 있다. 폴란드는 독일과 러시아의 지배를 받은 역사적 경험 때문에 친미노선을 걷는다. 호주는‘미국의 부보안관’ 이라는 오명을 감수하면서 미국과의 동맹을 통해 활동 반경을 넓히고 있다.

동맹체제의 재편은 미국 내에서도 논란이다. 할란 울만 미전략국제문제연구소(CSIS) 상급고문은 최근 기고문에서‘항구적으로 신뢰할 수 있는 미국의 동맹국’으로 영국 일본 외에 폴란드와 인도 호주를 거명했다.

반면 현재는 믿을 수 있으나 앞으로‘항구적으로는 믿을 수 없는 나라’로 사우디아라비아와 한국을 들었다. 사우디에 대해선 내부 정정 불안을 이유로 꼽았다. 한국을 믿을 수 없는 이유는 반미정서와 중국변수다.

한국과 미국은 새해부터 양국간 동맹의 새 좌표를 모색하기 위한 다양한 형태의 협의를 시작한다. 현장취재를 통해 미국의 여러 동맹국들의 전략과 국민정서, 그리고 고민을 살피면서‘초강대국과 동맹하는 법’을 탐구해 보았다.

■ 亡國의 역사 "기댈 곳은 슈퍼파워 美뿐"

폴란드의 심장부 바르샤바는 이방인들에게 매우 불친절한 도시다. 영어라곤 단어 하나 씌어있지 않은 도로 표지판이나 거리 간판으로는 길을 헤매기 십상이고, 간단히 끼니를 때울 맥도날드 가게도 손으로 꼽을 정도로 귀하다. 구 소련의 지배에서 벗어난 지 15년이 지난 지금도 소비에트식 잿빛 건물이 지배하는 거리는 창백하다.

바르샤바 거리의 겉 모습에서 미국의 그림자를 찾기는 어렵다. 그러나 속은 다르다. 폴란드 사람에게 논쟁을 걸면 한결같이 미국을 편든다. 얘기하다 열을 내는 사람도 적지 않다. 간판마다 영어 투성이면서 거리엔 반미 구호가 넘치는 서울에서 온 기자에게, 폴란드는 사람과 풍경이 모두 낯설다.

특히 이라크 전쟁에 대한 태도는 이해하기 어려웠다. 폴란드는 이라크에 1,400명 규모의 병력을 주둔시키고 있다. 그 동안 전투와 사고로 장병 17명이 목숨을 잃었다. 2차 대전 이후 전투에서 나온 첫 희생자다. 세계적인 흐름의 탓인지 요즘에는 여론조사에서도 60%가량은 이라크 전쟁에 대해 비판적인 응답이 나온다.

그런데도 폴란드인 다섯 명 중 셋은 이라크에서의 철군에 반대하고 있다. 이라크의 다른 다국적군들이 짐을 꾸리고 있는 가운데, 지난해 정권 교체에 성공한 우파 정부는 워싱턴의 요청을 받아들여 파병 기한을 올해 말로 1년 연장했다.

모순이 아니냐는 질문에 폴란드인들은 한결같이 역사에서 얻은 경험을 언급했다. 폴란드 최대 일간지 ‘가제트 뷔보르차’의 바르토쉬 벵글라르측 기자는 “폴란드인들은 독립과 자유를 얻기 위한 싸움에서 희생이 나올 수밖에 없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고 말했다. 이라크 전의 희생에 대해 미국을 원망하지 않느냐는 물음에 대한 대답이다.

그는 “‘우리의, 너희의, 자유를 위해’라는 속담도 있듯이 이라크 민족에 자유를 찾아주기 위한 정당한 전쟁은 곧 우리의 자유를 위해 싸우는 것이기도 하다”고 강조했다.

즈비그니에브 레비츠키 바르샤바대 중ㆍ동유럽연구센터 교수의 대답도 결국은 ‘역사 때문’이다. 그는 “폴란드에는 ‘반미’가 없다”면서 “미국은 폴란드의 적이었던 적이 없기 때문에 좋아하지 않을 이유가 없다”고 설명했다.

폴란드인이 결코 외세에 호의적인 민족은 아니다. 그들은 나치 독일과 소련에 대항해 바르샤바를 초토화시킬 정도로 항거했다. 하지만 유독 미국에 대해서만은 너그럽고 호의적일 수 밖에 없는 이유가 있다.

폴란드는 지정학적 위치 때문에 여러 차례 망국(亡國)의 슬픔을 겪었다. 18세기에는 프러시아 오스트리아 러시아 3국에 의해 3차례 걸쳐 갈갈이 찢겨져 나라 자체가 사라졌다(3국 분할).

폴란드는 가까이 있는 러시아와 독일을 경계하는 대신 영국, 프랑스, 그리고 미국처럼 멀리 있는 동맹을 구했다. 하지만 1939년 나치의 침공, 그리고 2차대전 후 소련의 유린 때 영국과 프랑스는 달려와주지 못했다. 폴란드가 위기에 처했을 때 도와줄 의지와 힘을 가진 나라는 미국 밖에 없다는 믿음이 여기서 비롯됐다.

공산정권때는 반미 프로파간다에 대한 반감이 결국 ‘반미에 대한 반감’을 부추기며 친미 감정으로 발전했다. ‘미국과 전쟁을 벌여 개전과 동시에 항복하자. 미국의 식민지가 되면 행복하게 살 수 있다’는 우스갯소리까지 나돌았을 정도다.

반전 여론 때문에 미국에서조차 지지도가 연일 추락하는 조지 W 부시 대통령도 폴란드에서만큼은 인기 정치인이다. 매력을 느껴서가 아니다. 벵글라르측 기자는 “부시 인기의 이유는 단 하나, 그가 미국의 대통령이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정부의 친미 외교정책도 절대적 지지를 받을 수 밖에 없다. 집무실에서 인터뷰한 비톨드 바시치콥스키 외무차관은 주저하지 않고 “미국의 특별한 동맹이 되고 싶다”고 말했다. 이 같은 태도는 좌ㆍ우파, 여ㆍ야를 망라해 친미 정책에 태클을 걸 반미 정당이 존재하지 않는 현실 때문이기도 하다.

바시치콥스키 차관은 더욱이 미국 영주권자다. 그는 외교관이 되기에 앞서 89년부터 3년간 미국 오리건대에서 유학해 미국이 ‘제2의 조국’이나 다름 없다. 미국 유학은 폴란드 엘리트의 필수 코스다.

공산정권 하에서도 미국 풀브라이트장학금의 수혜자는 900여명에 이른다. 바시치콥스키 차관은 “미국에서 태어나거나 교육을 받은 사람들이 많아 동일한 시각으로 세상을 볼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현재 폴란드 인구는 3,800만 명인데 반해 미국에 거주하는 폴란드계 ‘폴로니아’는 1,000만 명에 달한다. 18세기말 이후 나라를 잃은 설움, 전쟁, 공산체제의 억압을 피해 미국 이민을 선택한 이들이다.

폴란드에서도 미국에 대한 체온계 눈금은 서서히 내려가고 있다. 피오트르 마체이 카친스키 공공문제연구소 연구원은 “공산정권 시절 폴란드는 미국을 잘 몰랐기 때문에 미국은 선하고 러시아는 나쁘다는 흑백논리로 사고했지만 이젠 미국의 장ㆍ단점을 두루 파악했고 회색지대가 있다는 것도 알게 됐다”고 말했다.

이라크 전에 대한 평가가 돌아선 게 대표적 사례다. 그러나 폴란드인들은 여전히 “반전 여론과 반미 감정은 별개”라고 말하고 있다. 그리곤 기자에게“중국 일본에게 침략당한 한국의 역사가 폴란드와 비슷하지 않은가”라고 되물었다.

바르샤바=문향란 기자 iami@hk.co.kr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세상을 보는 균형, 한국일보Copyright ⓒ Hankookilbo 신문 구독신청

LIVE ISSUE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

0 / 250
중복 선택 불가 안내

이미 공감 표현을 선택하신
기사입니다. 변경을 원하시면 취소
후 다시 선택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