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민의 죽음이 헛되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뿐입니다.” 농민시위 도중 숨진 고 홍덕표씨와 전용철씨의 고향인 전북 김제시와 충남 보령시 마을은 새해맞이 활기찬 표정 대신 싸늘하고 무거운 침묵한 흘렀다.
31일 장례식을 치른 홍씨의 고향인 전북 김제시 백산면 상리 상서마을. 27가구가 모여 사는 이 마을 주민들은 새해 첫날에도 홍씨를 떠나보낸 충격에서 좀처럼 벗어나지 못하는 모습이었다.
무엇보다 홍씨의 죽음은 주민들을 심한 절망감과 소외감에 몰아 넣고 있었다. 동네에서 제일 젊다는 문인성(64)씨는 “쌀 개방으로 쌀값은 갈수록 떨어지고 마을에는 농사 지을 사람도 없다”며 “이젠 쌀 농사 지어서 돈 벌 생각 말고 밥이나 지어 먹고 살아야 할 것 같다”고 한탄했다.
마을 주민들은 수입쌀이 본격 판매되는 올해 더욱 힘들어질 농촌 현실을 염려했다. 시위현장에서 홍씨를 병원으로 옮겼던 박성섭(67)씨는 “홍씨처럼 농촌을 살려달라고 애원하고 싶지만 언제 정부가 힘없는 농사꾼들 위해 정책 세우는 것 봤냐”며 “농촌을 살릴 생각이 없는 현 정부에 대한 기대는 이미 접었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홍씨는 쌀 개방으로 무너지는 농촌을 상징하는 인물이 돼 있었다. 강승섭(78)씨는 “홍씨 사망 이후 주민들이 부쩍 홍씨와 쌀 개방 파장에 대해 많이 이야기하고 있다”며 “이 때문에 온 마을이 뒤숭숭하다”고 분위기를 전했다.
전씨의 고향인 충남 보령시 주교면 주교리 마을 주민들도 사정은 마찬가지. 전씨가 졸업한 관창초등학교 앞에는 ‘새해 복많이 받으세요’란 플래카드 대신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라는 주민 명의의 플래카드가 을씨년스럽게 걸려 있다.
주교1리 이장 유덕구(63)씨는 “전씨는 새마을지도자와 청년회 봉사부장, 의용소방대원 등을 도맡으면서 농촌을 꿋꿋하게 지켰던 총각”이라며 “이렇게 뜻 있는 젊은이들이 죽어야 하는 세상이 원망스럽다”고 말했다.
한 이웃주민은 “외지에 나갔다 돌아온 전씨는 처음에 버섯 농사 밖에 몰랐으나 농산물개방으로 버섯 값이 폭락하자 결국 농민운동에 뛰어든 사람”이라며 “농민들이 시위에 나서지 않고 농사일에만 매달릴 수 있는 세상이 왔으면 좋겠다”고 새해 희망을 피력했다.
한편 홍씨의 시신은 고향 인근에, 전씨는 경기 남양주시 마석모란공원 민주열사묘역에 31일 각각 안장됐다.
김제=최수학기자 shchoi@hk.co.kr보령=전성우기자 swchun@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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