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이 오면 풍년이 든다는데 내년에 우리 회사에 좋은 일만 있을 모양입니다.”
새해를 불과 며칠 앞두고 찾은 전남 여수시 월내동 여수산업단지내 GS칼텍스 여수공장.
여수 앞바다 쪽에서 매서운 바람과 함께 눈보라가 휘몰아치는데도 이 공장 노조 사무실은 ‘상생과 희망’의 열기로 훈훈했다. 박주암 노조위원장 등 노조 간부들은 수북이 쌓인 하얀 봉투를 정리하느라 여념이 없었다. GS홀딩스 등 대주주와 주유소 사장 등 고객들에게 보내는 연말 감사 편지라고 했다
. “2005년 한 해 동안 성원해준 데 감사드리며, 다가오는 새해에는 더욱 좋은 제품을 만들어 회사 발전에 기여하고 회사 가치를 높이겠다’는 내용이었다. 감사 편지를 발송한 뒤 노조 대표들은 회사 임직원들과 만나 함께 버스를 타고 인근 복지관, 고아원 등을 찾아 선물을 전달하고 목욕 시키기 등 연말 자원봉사 활동을 펼쳤다.
2004년 여름 노조의 장기 파업으로 세계 정유업계 사상 처음으로 공장 가동을 중단해야 했던 뼈아픈 상처의 흔적은 어느 곳에서도 찾아볼 수 없었다. 공장 초입에 있는 사무동 본관 벽면에 걸려있는 대형 플래카드에는 ‘신뢰받는 노동조합, 자주적인 노동조합, 상생하는 노동조합’이라는 글귀가 적혀 있어 달라진 이 회사의 노사문화를 압축해 전달하고 있었다.
박 위원장은 “조합원으로부터 신뢰를 받고 회사와의 상생을 통해 공존하고 번영하는 노조가 되겠다는 뜻”이라고 설명했다. 특히 ‘자주적인 노동조합’이란 파업 이후 민주노총을 탈퇴했던 이 회사 노조가 더 이상 상급 단체에 가입하지 않고 창의적이고도 생산적이며 독립적인 노조 활동을 하겠다는 의미라고 덧붙였다.
박 위원장은 “파업사태를 겪으면서 노사가 상생해야 서로 공존할 수 있다는 깨달음을 얻었다”며 “앞으로 GS칼텍스 노사는 회사와 종업원, 주주 및 고객, 지역사회를 위해 함께 팔을 걷어붙일 것”이라고 다짐했다.
이 회사 노조가 최근 장기 무분규를 선언하고 생산성 향상과 경쟁력 제고에 최선을 다하겠다는 내용의 ‘노사화합 선언’을 한 것도 같은 맥락에서 이뤄졌다. 박 위원장은 “이번 노사화합 선언을 통해 노조는 고용 안정을 회사로부터 보장 받았고, 회사는 생산성 향상을 통한 안정적인 발전 기반을 마련했다”고 평가했다.
특히 회사측은 노조원들이 파업 때문에 받았던 징계 조치 때문에 승진이나 호봉 승급시 받을 수 있는 불이익과 관련, 노조에 ‘완전 사면’ 조치로 화답했다. 더욱이 조합원들의 자기계발을 위해 최대한 배려하고, 노사 양측이 합의를 해서 생산직 노조원도 관련 분야의 최고 전문가가 될 경우 임원이 될 수 있는 길을 마련하기로 했다. 또 매년 200여명씩 5년 동안 모든 조합원들에게 선진국 산업현장을 1주일 정도씩 둘러볼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기로 했다.
중국 사업 강화 등에 대비한 중국어 강좌도 개설돼 저녁이면 강좌를 수강하는 조합원들의 목소리로 공장에 활기가 넘친다고 회사 관계자는 전했다. 이 회사 인재개발(생산) 부문장인 김성진 전무는 “원칙을 기본으로 대화를 하면 노사간에 해결되지 않을 문제가 없다”며 “이제 GS칼텍스 노사는 세계 어느 회사에서도 볼 수 없는 새로운 노사 패러다임을 만들어낼 것”이라고 말했다.
김 전무와 박 위원장 등 노사 대표들은 병술년(丙戌年) 새해도 함께 맞는다. 새해 첫날 새벽 여수 앞바다가 훤히 보이는 공장 사택에 모두 모여 해맞이 행사를 갖고 덕담을 주고 받은 뒤 떡국을 함께 끓여 먹으며 ‘희망과 도약의 2006년’을 다짐하는 것이다.
여수=황양준기자 naigero@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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