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7일 태릉선수촌 국제빙상장. 쓱~싹 쓱~싹, 날렵하게 트랙을 도는 쇼트트랙 국가대표 선수들의 예리한 스케이트 날 소리가 귀 속을 파고든다. 코치의 쩌렁한 불호령이 떨어진다. “왜 이리 느려 터졌어. 이러다 내일 아침에 결승선 들어올래!”
몇 분이 지났을까. 질주를 마친 선수들이 헉헉 가쁜 숨을 몰아 쉬다 털썩털썩 빙판에 주저 앉는다. 111.2m의 트랙을 한번도 안 쉬고 전속력으로 56바퀴나 돌았다. 유니폼은 땀 범벅이고 거울처럼 매끈했던 빙판은 스케이트 자국들로 엉망이다. 연습 전에 “오늘은 더 추운 것 같다”며 손을 호호 불었던 변천사(18ㆍ신목고)의 얼굴이 벌개졌다.
연말연시 분위기로 들뜬 요즘이지만 한국 엘리트 스포츠의 요람인 태릉선수촌은 태극 전사들의 힘찬 함성으로 기지개를 켜고 굵은 땀방울로 하루를 보낸다.
2006년엔 이탈리아 토리노동계올림픽(2월10~26일)과 카타르 도하아시안게임(12월1~16일) 등 굵직한 스포츠 이벤트가 기다리고 있기 때문이다. 지난해 12월말 현재 태릉선수촌에는 7개 종목 221명의 선수와 코치들이 구슬땀을 흘리고 있었다.
쇼트트랙은 1992년 알베르빌 대회를 시작으로 모두 11개의 금메달을 따낸 동계올림픽의 효자 종목. 동계올림픽을 한 달여 앞둔 쇼트트랙 선수들의 마음은 그래서 더 급하다.
토리노 동계올림픽에서는 남자 안현수(20ㆍ한국체대)와 여자 진선유를 필두로 3개의 금메달을 겨냥하고 있다. 매일 4시간 동안 약 80km를 달리며 체력 강화에 집중하고 있다. “하루만 쉬어도 빙판 감각을 잊어버리기 때문에 선수촌을 떠날 수 없다”는 것이 송재근 코치의 말이다.
선수촌의 또 다른 훈련장인 개선관 1층은 쿵쿵 대는 소리로 요란하다. 장미란(22ㆍ원주시청) 등 역도 선수 6명이 바벨을 번쩍번쩍 들었다 놨다를 반복한다. 퇴촌한 다른 선수들과 달리 ‘나머지 공부’를 자진한 선수들이다. 전병관 역도 상비군 감독은 “저 녀석들 때문에 연말에도 못 쉰다”면서도 흐뭇한 표정이다.
개선관 3층은 체조와 펜싱 선수들로 북적거렸다. 가상의 적을 놓고 칼을 찌르는 남녀 32명의 검객들의 기합 소리가 하늘을 찌른다. 체조 훈련장은 아슬아슬한 평균대 연기를 펼치는 선수들의 눈빛으로 진지하다 못해 숙연하다.
밤 10시. 불이 꺼지면서 선수촌의 고된 하루도 끝난다. 그러나 밤이 이슥해져도 살아 펄떡거리는 것이 있다. 바로 선수들의 가슴 속에서 힘차게 고동치고 있는 메달을 향한 꿈이다.
김일환기자 kevin@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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