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의 인권은 경찰이 지키고 경찰의 인권은 국민이 지켜주셔야 한다.”
농민 전용철 홍덕표 사망 사건의 직접 책임을 외면하다 여론의 압박에 29일 사퇴한 허준영 경찰청장의 퇴임식이 30일 오전 서울 서대문구 미근동 경찰청사 대강당에서 부인 강경애씨 등 500여명이 모인 가운데 열렸다.
단상에 선 허 청장은 “땀과 눈물이 밴 제복을 마지막으로 벗어야 하는 이 시간”이라고 운을 뗀 뒤 손수건으로 눈물을 닦으며 한동안 목이 메었다.
14쪽 분량의 퇴임사를 읽는 동안 그는 3, 4차례 눈물을 흘렸다. 경청하던 경찰관들도 소리 내 울었고 14차례나 박수를 보냈다. 일부 경찰관은 “사실상 경찰이 죽었다”며 검은색 근조(謹弔) 리본을 달아 바깥 분위기와는 다소 다른 경찰 내부 모습을 보여줬다.
퇴임사는 ‘마음 놓고 학교 가기 운동’ 등 재임 동안 일군 성과와 개인적인 소회, 경찰 조직에 대한 당부 등 순으로 이어졌다. 허 청장은 “험난한 범죄 현장에서, 힘겨운 집회 현장에서, 위험천만한 도로 한가운데서 여러분이 흘린 땀방울 하나하나가 장차 경찰 발전의 귀중한 초석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폭력시위 추방과 평화시위문화 정착’에 대한 소신도 굽히지 않았다. 허 청장은 “기필코 폭력시위의 구습을 털어내야 하겠다”고 강조한 뒤 “사회적 갈등을 경찰관만이 길거리에서 온몸으로 막아내고 그 책임을 끝까지 짊어져야 하는 안타까운 관행이 이 시점에서 끝나기를 소원한다”며 울먹였다.
허 청장은 “사망한 농민 두 분에 대해서도 깊은 애도의 심정을 표한다”고 했지만 여전히 책임지겠다는 언급은 없었다. 퇴임사가 끝나자 1층 로비엔 수십 명의 일선 경찰관들이 찾아와 ‘우리는 당신을 보내지 않습니다’ ‘이런 식의 희생양은 안됩니다’ 등이 적힌 플래카드와 피켓을 들어올렸다.
경찰 내부에는 ‘왜 경찰만 죄인 취급하느냐’는 등 조직적인 반발 분위기가 역력하다. 경찰 입장에서 허 청장은 농민사망에 대한 책임을 져야 할 당사자가 아니고 ‘정치적 희생양’이라는 것이다. 경찰 내부통신망엔 “총경급 이상 모든 간부는 사표를 내 경찰의 결의를 보여야 한다”는 글까지 올라왔다.
청장 직무대행인 최광식 경찰청 차장은 퇴임식 직후 경찰청 총경급 이상이 모인 가운데 간부대책회의를 열었다. 경찰청 관계자는 “치안총수를 억울하게 잃은 비통함이 조직 내부에 팽배해 이를 다독이고 현안을 잘 해결하기 위한 회의였다”고 전했다.
한편 허 청장과 함께 사퇴한 이기묵 서울경찰청장도 이날 오전 서울경찰청사 2층 강당에서 퇴임식을 가졌다.
고찬유기자 jutdae@hk.co.kr강철원기자 strong@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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