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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설] 다시 기본으로 돌아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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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설] 다시 기본으로 돌아가자

입력
2005.12.30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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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술년(丙戌年) 새 아침이 밝았다. 귓가엔 아직도 ‘희망찬 미래를 향한 화합과 전진’이라는 염원을 싣고 울려 퍼진 제야(除夜)의 종소리가 쟁쟁하다.

종소리에 담긴 뜻대로 희망과 활력으로 충만해야 할 새해 아침을 맞지만 대한민국 보통 사람들의 마음은 착잡하기 그지없다. 캄캄한 터널 같았던 한해가 저문 뒤에도 만만치 않은 도전과 시련이 우리 앞에 놓여있기 때문이다.

새해 새 아침마다 희망과 기대를 담아 되풀이한 다짐은 지난 해에도 실현되지 않았다. 타협과 양보, 균형과 절제를 외면한 정치권의 갈등에서 비롯한 불확실성과 절망의 질곡에서 벗어나고자 1년 전 새해 아침에 쓴 ‘균형과 실용으로 갈등을 넘자’는 신년사설도 공허한 외침이 되고 말았다.

오히려 첨예한 대립 속에 빚어진 갈등과 혼란에 국민들은 참담한 고통을 감내해야 했고 황우석 교수의 줄기세포 논란에 이르러서는 정신적 공황상태에 빠지는 충격을 겪었다.

온 나라가 헤어나기 힘든 혼돈의 늪에 빠져든 것은 과거청산, 강정구 사건, 도청 사건, 황우석 파동 등을 거치면서 극단적 대결구도로 치달은 탓이다. 이는 사회 각 분야에 만연한 양극화 현상에 더해 혼란과 갈등을 증폭시켰다.

지도층 인사들이 마구 뱉은 말의 위해(危害) 또한 국민을 짜증스럽게 했다. 1년 전 대통령은 ‘경제 올인’을 선언했지만 민생의 고달픔은 나아진 게 없다. 진정으로 국민을 위하는 리더십의 부재가 국가 전체를 혼란에 휩싸이게 했다.

이런 와중에서도 우리 사회는 미래를 향한 힘겨운 걸음을 떼어놓았다. 뒤틀린 역사를 바로 잡는 일에 착수했고 인권의 존엄성을 재확인했다. 많은 대가를 치르면서 개발의 재앙과 환경의 중요성도 깨달았다. 거짓 영웅의 가면을 벗겨내고 진실을 찾아내는 고통스러운 과정에서 스스로의 자정능력과 발전 가능성을 확인한 것도 굳이 자위하자면 성과였다.

힘겹게 한 해를 넘기고 새해를 맞는 국민들의 한결 같은 소망은 올해는 확실히 달라져야 한다는 것이다. 결코 지난해와 같은 악몽이 되풀이되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국민이 입은 깊은 상처를 치유하고 분열과 대립으로 얼룩진 사회를 통합하는 해가 되기를 갈망하고 있다. 그러기 위해서는 모두가 기본으로 돌아가는 길밖에 없다.

변칙과 편법을 단호히 거부하고 원칙과 정직을 우직하게 지키면서 나와 생각이 다른 남에 대한 인정과 관용을 아끼지 않는 사회로 나아가야 한다.

새해 전망은 그리 밝지 않다. 넘어야 할 산들이 첩첩하다. 당장 사학법 개정의 여파로 야당이 전면투쟁을 벌이는 중이다. 5월 지방선거라는 대사를 치러야 하는 마당에 집권 4년차에 접어드는 대통령은 레임덕으로 가는 시기를 맞는다. 개헌 논의, 행정중심복합도시 및 혁신도시 건설, 교원평가제, 농촌문제, 청년실업, 저출산ㆍ고령화 문제 등 굵직한 정치ㆍ경제ㆍ사회 현안들이 지뢰밭처럼 깔려있다.

특히 지방선거가 대선의 전초전이 될 수밖에 없는 상황에서 정국이 어디로 갈지 아무도 점칠 수 없다. 국정이 자칫 대권 다툼에 함몰되고 레임덕이 겹치면서 그 어느 때보다 혼란스런 해가 될 가능성이 크다. 국민의 선택을 위해 선의의 경쟁을 벌이는 것은 민주주의의 당연하고도 중요한 절차이지만, 기본에서 벗어나 파행으로 치달을 때는 큰 대가를 치르게 될 것이다.

정부는 올해 경제를 낙관적으로 보고 있지만 경제운용의 초점이 민생에 모아지지 않는다면 어떤 화려한 지표와 실적도 빛을 잃을 것이다. 우리 사회의 최대 과제로 떠오른 양극화 해소의 길은 투자 활성화와 일자리 창출을 통해 찾을 수밖에 없다.

선거를 목전에 둔 정당과 정치인들의 주문에 흔들려 민생을 저버리지 않기를 당부한다. 경제문제뿐 아니라 모든 국가시책의 초점은 국민의 살림살이 향상에 모아져야 한다.

경제의 발목을 잡는 사회적 갈등을 줄이려면 강파른 이념적 대치보다 실질적 정의를 실현하는 데 힘을 쏟아야 한다. 이상과 현실, 성장과 분배, 계층과 지역의 편차 등을 슬기롭게 극복하는 구체적 방안을 고민해야 한다.

과거의 질곡에서 벗어나 현실과 미래의 과제에 힘을 쏟아야 한다. 이념 분단을 극복하자면서 이념의 벽을 다시 쌓고, 민주와 인권을 무시한 과거를 바로잡자면서 민주와 인권 수호의 초석인 헌법 정신과 법치 원칙을 외면하는 자세는 바꿔야 한다. 공동체가 합의한 원칙을 중시하고, 각자 본분에 충실한 정직한 사회를 먼저 이뤄야만 어두운 과거를 딛고 밝은 미래를 지향할 수 있다

남북 관계는 올해도 북핵 문제가 변수다. 북핵 문제에 진전이 없이는 남북관계의 질적 도약이 힘들 뿐만 아니라 또다시 한반도의 긴장이 고조될 수 있다. 정부는 위조지폐문제는 북미양자 간에 풀어가도록 유도하고 6자회담은 그와 별개로 재개될 수 있게 외교역량을 발휘해야 한다. 영화 드라마 가요를 중심으로 일고 있는 한류 열풍이 진정한 문화경쟁력으로 자리잡을 수 있도록 문화 콘텐츠를 지속적으로 심화ㆍ확장하는 것도 과제다.

황 교수에 대한 실망도 생명과학, 나아가 한국 과학 전체에 대한 폄하나 경시로 이어져서는 안 된다. 당장의 시장이익을 겨냥하는 비과학적 태도에서 벗어나 장기적으로 꾸준한 과학투자를 계속해 나가다 보면 저절로 발전의 싹이 트고 좋은 열매를 맺을 것이다.

이런 벅찬 과제를 감당하려면 정치지도자부터 보다 큰 시야, 넓은 도량, 따뜻한 가슴을 가져야 한다. 국민을 두려워할 줄 알고 국민 앞에 겸손해야 한다. 사회 각 계층도 다양성을 인정하고 나와 다른 것을 인정하고 화합을 추구해야 한다.

넘어야 할 고비와 헤쳐야 할 가시밭길이 널려있지만 다시 떠오른 눈부신 태양은 희망과 용기를 준다. 모든 갈등과 번민을 떨치고 다시 일어설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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