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서대구문 창천동에 사는 주부 이은금(58)씨는 요즘 신문 발송 때문에 봉투 접고 우표 붙이느라 바쁘다. 두 아들과 남편도 거든다. 물론 신문 보급소는 아니다.
남편은 유명한 고구려 전문가 서길수(61) 서경대 경제학과 교수. 고구려연구회 이사장인 서 교수와 고구려연구회 자료실장을 맡고 있는 이씨는 두 아들과 20년째 가족신문 ‘우리집’을 만들고 있다. 지난 25일 발행한 151호(2005년 12월호)는 따끈따끈한 서 교수 집안 소식을 A4 용지 20쪽 분량에 PDF 파일로 담았다.
1면 톱기사 제목은 ‘새해 복 많이 심으십시오’. 최근 몇 해간 편집국장을 맡아온 이은금씨는 29일 “복을 받는 것은 은행에서 예금을 찾는 것이고, 복을 심는 것은 은행에다 예금을 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초창기와 달리 지금은 친지 등에게 500여 부는 이메일로 발송하고, 100여 부는 우편으로 부친다.
“1985년 4월 15일이 창간일이니 벌써 20년이 넘었습니다. 아는 초등학교 선생님이 ‘들꽃’이란 학급 신문을 보여주셨는데 아이들 글이 너무나 순수하고 예뻐서 가족신문을 창안했습니다. 애들이 고등학교 3학년 때도 ‘우리집’은 쉬지 않고 달마다 꼬박꼬박 나왔습니다. 하지만 1997년부터는 부정기적으로 나오게 됐고 나중에는 1년에 한두 번 내는 정도가 됐지요. 옛날에는 ‘텔레비전 다시 보다’‘지하철 3호선 타 보다’‘영화 부시맨 감상’같은 시시콜콜한 이야기가 중요한 뉴스였지요. 가끔 옛날 신문을 들춰 보면 새록새록 추억에 잠기는 게 참 좋습니다.”
2면부터는 각자 한 해의 활동과 새해 각오를 담았다. 올 7월 7박 8일간 큰아들 상원(29)씨와 서씨 부부가 러시아 알타이 탐사를 다녀온 것에서부터 10월 서 교수가 주례를 선 내용도 있다. ‘작은 집 소식’난을 보면 만화가가 꿈인 삼촌네 집 막내가 여름방학 때 아버지와 일본에 가서 만화를 구경했다고 한다.
처음에는 8절지에 수성 사인펜으로 기사를 썼다. 인쇄소에서 나온 신문을 찾을 때의 뿌듯함은 이루 말할 수 없었다. 아이들 일기와 ‘이 달에 읽은 책’난도 꾸준히 연재했다. 용돈 인상 문제를 놓고 벌어진 치열한 가족회의 녹취록도 있다.
연세대 대학원 생명공학과 박사과정인 막내 아들 상욱(28)씨는 초등학교 5학년 때 쓴 ‘새 자전거 구입’ 기사를 가장 좋아한다. “너무나 타고 싶은데 그냥 말하기 뻘쭘하잖아요. 그런데 그 이유를 논리적으로 설명해야 했어요. 편집회의 때는 자기 생각을 말하는 능력을 키우게 됩니다. 컴퓨터 게임을 좋아하는 요즘 아이들은 말을 많이 할 기회가 없는 것 같아요. 그런 과정이 아버지의 교육 의도라고 생각되는데 결국 거금 12만원짜리 자전거를 사게 됐습니다. 지금도 기사를 찾아보면 자전거에 대한 설레임이 살아납니다.”
하지만 바로 다음 달 가족신문 제목은 이랬다. ‘자전거 분실 사고!’
서 교수는 가족신문이 가족의 역사 기록물이자 자녀들 성장과정의 파노라마라고 예찬한다. “가족신문을 만드는 이유는 우선 기록 기능입니다. 다음은 아이들 문장력 강화지요. 애들 대입 논술 때 걱정 안 하셔도 됩니다. 가장 중요한 게 가족간 대화입니다. 대화는 얘기만 하는 것이 아니라 무엇인가 함께 하는 것입니다. 부모 자식간에 아주 사소한 공동 참여 프로그램을 가지는 게 중요합니다.”
두 아들이 결혼하면 ‘우리집_1’과 ‘우리집_2’로 나눠 신문은 계속 발행된다고 한다.
박석원 기자 spark@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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