육군 훈련소 인분사건, 최전방 경계초소(GP) 총기난사 사건, 노충국씨 사망 사건 등 올 한해 군에는 영일(寧日)이 없었다. 하지만 묵묵히 조국을 지키는 장병들이 있기에 대한민국과 군은 여전히 건재하다.
2005년의 마지막을 며칠 앞둔 27, 28일 동부전선의 강원 인제군 12사단 전방관측소(GOP)부대를 찾아 ‘전선 이상무’를 외치는 장병들과 시간을 함께 보냈다.
추위와의 전쟁
바람이 세찬 고지는 낮에도 영상으로 올라가는 법이 없다. 27일 오후 5시 온도계는 영하 8도를 가리키고 있었지만 바람이 강하게 불면서 체감온도는 영하 10도 이하로 떨어졌다.
“EENT(일몰) 30분 전부터 30분 후까지 전반야(前半夜) 합동근무를 명받았습니다.”
부소초장 김광훈(25) 중사의 신고로 전반야 경계근무가 시작됐다. 완전무장한 용사(12사단은 병사 대신 용사로 호칭한다)들의 얼굴이 벌써 발갛게 달아올랐다. 맨손으로 소총을 잡고 있던 최현수(21) 일병이 복장검사에서 지적을 받았다.
중대 행정보급관 이상건(36) 상사가 모장갑을 벗어주며 “방한장갑 속에 면장갑이라도 꼭 끼고 근무하라”고 당부한다. 25발들이 탄창 3개와 대검, 수류탄까지 지급받은 용사들은 이 상사의 인솔에 따라 철책 경계로로 들어섰다.
용사들은 철책망에 걸려있는 순찰패를 뒤집으면서 전진했다. 철책에 3개씩 걸린 순찰패는 야간근무에 투입되면서 어둠에도 잘 띄는 흰색으로 뒤집고 새벽에 야간근무에서 빠지면서 빨간색으로 되돌려 놓는다.
GOP소초에서 동쪽으로 11㎞에 걸친 경계담당 철책선을 지키기 위해 야간근무조 8명이 4개 초소에 투입됐다. 근무자들은 밀어내기식으로 초소를 이동하며 자정까지 6시간 동안 경계를 선다.
내복과 전투복, 방한복, 방한내피 등 4~5겹을 껴입었지만 용사들은 그래도 춥다고 했다. 지경찬(21) 일병은 “투입된 지 3~4시간 지나면 발을 잘라내고 싶을 정도로 고통스럽다”고 말했다. 새벽에는 기온이 영하 20도, 체감온도가 영하 30도까지 떨어지기 때문이다.
GOP소초 뒤켠에 5㎙ 높이로 세워진 고가(高架)초소는 바람이 적(敵)이다. 초소를 올라갈 때 난간을 잡지 않으면 굴러 떨어질 정도로 세차게 분다. 윤철현(22) 상병은 “추위도 고통스럽지만 적막감을 견디는 것도 쉽지 않다”고 말했다.
둘러보니 철책을 따라 봉화불처럼 피어오른 투광등과 비무장지대(DMZ) 안에 섬처럼 떠있는 아군 GP의 불빛 이외에는 칠흑 같은 어둠이다. 남북 양쪽이 심리전방송을 중단한 뒤로는 이 일대가 적막강산으로 변했다고 한다.
GOP소초 내무실은 최신식으로 바뀌었다. 바깥이 아무리 추워도 실내는 영상 20도를 유지, 용사들이 팬티와 셔츠 차림으로 생활할 정도다. 침상을 들어낸 내무실에는 9개씩의 개인침대까지 들어서 있다.
하지만 물이 문제다. 2㎞ 후방 취수장에서 물을 끌어쓰는데 가끔 노후한 수로가 터진다고 했다. 올 겨울 들어서도 1차례 터지는 바람에 급수차로 물을 공수받아야 했다.
긴장 속의 DMZ수색
경계근무뿐 아니라 수색ㆍ정찰작전도 혹한기라고 쉬지 않는다. 사단 예하 백곰부대가 수리산 일대 수색작전에 투입된 것은 28일 오후 2시였다.
분대원을 인솔하던 이기만(27) 중사는 “민간인통제선 이남 지역이지만 작전지역은 유사시 적의 예상침투로”라며 “특히 1996년 강릉 잠수함 좌초사건 당시 침투조들이 거쳐 간 곳이라 비트(비밀 은거지)가 구축돼 있을 가능성도 있다”고 설명했다.
용사들은 지향사격 자세를 유지하면서 작전지역으로 서서히 전개해 나갔다. 긴장한 탓인지 위장크림을 잔뜩 바른 통신병 김주홍(21) 일병의 얼굴에 땀이 송글송글 맺혔다.
전방부대 수색ㆍ정찰의 절정은 DMZ내 수색 정찰이다. 사단 예하 수색대대의 1개 중대는 혹한기에도 하루 1차례 GOP철책을 통과해 DMZ 내에서 수색ㆍ정찰을 펼친다. 예년과 달리 적설량이 적어 큰 어려움은 없지만 지뢰밭을 통과하고 적 GP 바로 앞까지 들어가기 때문에 언제나 극도의 긴장이 감돈다.
수색대대장 김의열(40ㆍ육사44기) 중령은 “작전을 마치고 나오는 용사들을 위해 GOP 통문에 따끈한 차를 준비해놓지만 긴장한 탓에 대부분 담배부터 찾는다”고 말했다.
그런데 최근 들어 안전한 작전과 용사들의 건강을 위해 수색대대는 금연운동을 펼치고 있어 통문 앞에서 담배 피우는 모습은 이제 옛 풍경이 됐다.
인제=글 김정곤기자 jkkim@hk.co.kr사진 왕태석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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