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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J, 임동원 특사에 "김정일 분석" 밀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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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J, 임동원 특사에 "김정일 분석" 밀명

입력
2005.12.29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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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일 위원장이 어떤 사람인지 파악하라.”

임동원 전 통일부 장관은 2000년 6ㆍ15 남북정상회담 직전 특사로 방북할 때 김대중 전 대통령이 내린 3가지 밀명 중 하나가 ‘김정일 분석’이었다고 밝혔다.

나머지 두 가지 임무는 정상회담 의제에 대한 북측 반응, 합의서 초안 작성이었다. 이런 내용은 통일부가 광복 60년, 6ㆍ15 공동선언 5년을 기념하기 위해 29일 발간한 ‘하늘길 땅길 바닷길 열어 통일로: 통일노력 60년’이라는 책자에 담겼다.

임 전 장관은 이 책 집필진과의 인터뷰에서 정상회담 전 미국과의 사전협조 사실도 공개했다.

그는 “김 전 대통령은 미국과는 비밀없이 협조해야 한다는 입장이었다”며 “다만 극비사항이 사전에 언론에 보도되지 않도록 미국의 대통령, 국무장관 등 6인에게만 보고되는 것을 전제로 사전 협의를 했다”고 말했다. 그는 당시 한미간 연락책은 보스워스 주한 미대사와 자신이 맡았다고 말했다.

임 전 장관은 또 남북관계 전환기의 주요 인물로 이홍구 전 통일원 장관, 김종휘 전 청와대 외교안보수석, 도널드 그레그ㆍ제임스 레이니 전 주한 미대사를 꼽았다.

이 전 장관은 1989년 한민족공동체 통일방안을 만들었고 김 전 수석은 90년대 초반 남북기본합의서, 비핵화공동선언 합의의 사령탑을 맡았다는 이유 때문이다. 또 그레그 전 대사는 남한 내 미군 핵무기 철수 등에 기여했고 레이니 전 대사는 94년 1차 핵위기 때 지미 카터 전 미 대통령의 평양방문을 주선한 공이 평가됐다.

85년 안기부장 특보로 남북정상회담을 추진했던 박철언 전 의원도 비화를 공개했다. 박 전 의원은 “85년 7월11일과 26일 판문점에서 한시해 노동당 부부장과 2차례 비밀접촉을 가졌고 9월4일 허담 노동당 비서가 특사로 서울을 방문했다”며 “전두환 대통령과 북측 대표단의 면담은 보안상 이유로 기흥에 있는 최원석 동아건설 회장의 별장에서 이뤄졌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자신과 당시 안기부 특보실 연구실장이었던 강재섭 한나라당 원내대표 등이 장세동 안기부장과 함께 평양을 방문, 평양 정상회담 개최를 김일성 주석과 합의했다고 밝혔다.

하지만 그는 “돌아온 뒤 부산 청사포 앞 무장간첩선 사건이 터지면서 전 대통령이 추진 중단 지시를 내려 결국 결렬됐다”고 말했다.

책자에는 72년 7ㆍ4 남북공동성명 추진과정도 수록됐다. 정홍진 전 중앙정보부 국장은 이후락 당시 중정부장과 함께 방북했던 상황을 설명했다. 그는 “72년 5월4일 밤 김 주석을 만났고 7ㆍ4 남북공동성명의 통일 3원칙은 이 회의에서 김 주석이 주로 말한 것을 토대로 나왔다”고 말했다.

정 전 국장은 또 김 주석의 한국전쟁 사과와 관련, “직접적인 사과를 한 것은 아니고 ‘앞으로 다시 그런 일이 없을 것’이라고 언급했다”고 전했다. 김신조 사건에 대해서는 김 주석이 “나도 모르게 북한의 좌경맹동분자에 의해 야기된 일이며 박정희 대통령에 미안하게 생각한다”며 “사건의 주동자들이 숙청됐다”고 강조했다고 정 전 국장이 말했다.

428쪽 분량의 이 책은 강만길 고려대 명예교수가 발간위원장을 맡았고, 분단확정기(45~53) 냉전기(54~87) 탈냉전기(88~현재)로 나눠 지난 60년의 남북대화와 통일분야 주요 사건을 일목요연하게 정리했다.

정상원 기자 ornot@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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