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권에서 허준영 경찰청장이 물러나야 한다는 목소리가 확산되고 있다. 민주당과 민주노동당이 거듭 해임을 촉구하는 가운데 28일에는 열린우리당까지 강경으로 돌아서 자진사퇴를 요구하고 나섰다. 여당의 강경선회에는 허 청장이 물러나지 않으면 민심 수습이 어렵다는 판단이 깔려있다.
우리당 오영식 공보부대표는 이날 의원총회 브리핑에서 “경찰청장이 임기제라 물러날 수 없다고 하는 것은 책임 있는 자세로 받아들이기 어렵다는 의견이 많았다”고 말했다.
이석현 의원도 “독재정권 때나 있던 일이 발생한 것은 참으로 부끄러운 일”이라며 “임기가 남았더라도 우리당이 나서서 자진사퇴를 촉구하자는 주장에 많은 의원들이 동의하는 분위기였다”고 전했다.
한 386의원은 “역대 어느 정부보다 인권을 소중한 가치로 여긴다고 강조해온 참여정부의 경찰청장이 자기 입으로 임기제를 들먹이는 것은 뻔뻔함의 극치”라고 비난했고, 한 중진의원은 “법에 따라 탄핵소추라도 해야 될 판”이라며 불쾌감을 감추지 않았다.
실제 이날 의총에서는 일부 의원들이 사퇴촉구결의안 제출을 주장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사태의 심각성은 외면한 채 임기제를 방패막이로 자리를 보전하려는 허 청장에 대한 당내의 강한 불만 기류를 읽을 수 있다.
전날 허 청장이 사퇴불가로 맞선 당시에도 덤덤했던 우리당이 하루 만에 강경으로 돌아선 데는 청와대와의 교감이 있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노무현 대통령이 임기제를 이유로 경질할 수 없음을 밝혀 청와대에서 대놓고 허 청장에게 압박을 가하기가 어려운 만큼 당에서 총대를 메기로 한 게 아니냐는 얘기다. 허 청장 사퇴를 요구하는 여론도 영향을 미쳤다.
이해찬 국무총리도 이날 출입기자와의 송년 오찬 자리에서 “허청장의 거취는 본인이 스스로 결정해서 판단해야 한다”며 “그런 차원에서 지켜보고 있다”고 사퇴 촉구성 발언을 했다.
허 청장에 대한 민주당과 민노당의 압박 수위도 훨씬 높아졌다. 민주당은 해임촉구 성명서를 낸 뒤 “노 대통령이 해임을 거부하거나 지연할수록 사태는 더 악화될 것”이라고 경고했다.
민노당은 아예 탄핵소추안을 발의키로 했다. 심상정 수석부대표는 “여당도 함께 나서야 한다”는 말로 본회의 법안 처리를 위해 두 당의 도움이 절실한 우리당을 압박했다.
반면 한나라당은 허 청장 대신 노 대통령을 겨냥했다. 이계진 대변인은 “문책 권한이 없으니 본인이 알아서 하라는 대통령의 우유부단하고 무책임한 태도 때문에 국민도 경찰청장 본인도 헷갈리고 있다”고 말했다.
양정대 기자 torch@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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