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준영 경찰청장은 29일 사임의 뜻을 밝히면서 평화적 집회ㆍ시위문화 정착을 거듭 당부했다. 사퇴가 두 농민의 죽음에 대해 책임을 지는 성격이기 때문에 “물러나면서도 책임은 못 지겠다는 말이냐”고 힐난하는 소리가 나온다. 하지만 경찰청장의 책임 여부를 떠나 평화적 시위문화는 비단 그만의 바람이 아닐 것이다.
사회 각 분야에 합리적인 절차를 통해 자신의 의사를 전달하려는 문화가 정착됐지만 시위는 여전히 제자리 걸음을 하고 있다. 올해도 시위 현장에서 각목은 물론이고 화염병과 돌, 새총까지 발견됐다.
홍콩에서도 한국 시위대의 과격한 행태가 도마에 올랐다. ‘한국시위=폭력시위’라는 과거의 등식에서 아직 자유롭지 않음을 확인한 한 해였다. 각종 진압 도구를 무리하게 사용한 경찰도 비난을 받아야 함은 물론이다. 결국 올 한해 경찰과 시위 참가자 양측에서 사상자가 속출하고 말았다.
시위 현장을 취재하는 기자들도 불상사를 대비해서 중무장을 한 채 나선다. 때로 경찰이든 시위대든 분명히 사고를 칠 것이라는 확신에 가까운 예단을 갖고 취재에 임할 때도 있다. 시위를 왜 하고 있는지 본질적인 문제를 파악하기보다는 폭력과 충돌에 대비하는 취재자세가 돼버리는 셈이다.
시위문화라는 게 어느 한쪽의 책임은 아니다. 이런 면에서 경찰이 청장의 사퇴와 함께 시위문화 개선을 천명한 만큼 이제 공은 농민단체를 비롯한 시민ㆍ사회단체로 넘어왔다.
경찰청장의 사퇴로 이번 사태가 끝나는 게 아니라는 얘기다. 돌아가신 두 농민도 다가오는 새해엔 이런 비극이 다시 벌어져서는 안 된다고 바랄지 모른다. 평화적 시위문화라는 새 판을 짜는 작업이 이제부터 시작이라면 그 작업은 경찰만의 몫이 아님을 모두가 인식했으면 한다.
강철원 사회부기자 strong@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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