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료분쟁조정 관련 법안이 17년간이나 표류하고 있다. 의료사고로 인한 분쟁은 해마다 증가하고 있으나 현행법상 제도가 유명무실하여 불법적인 방법이나 상당한 시일과 비용이 소요되는 소송절차에 의존하고 있고, 그로 인한 사회적 비용도 많이 증가하고 있어 새로운 의료분쟁해결제도의 도입이 절실히 필요하다.
그런데 의사단체가 1980년대 말부터 입법을 추진해온 ‘의료분쟁조정법안’은 조정위원의 구성비율에 대하여 아무런 규정이 없고, 기본권 침해라는 이유로 폐지하는 추세인 강제적 조정전치주의를 도입하고 있다.
또 조정이 성립되기 어렵다는 이유로 의료사고로 인한 손해배상을 받을 권리를 양도하거나 압류하지 못하도록 규정하고 있고, 평등권 위반의 논란이 있는 광범위한 형사처벌 특례를 두고 있으며 그 외에도 제3자 개입금지, 난동자 가중처벌 등의 규정을 두고 있었다.
이런 이유로 과거의 법안은 의료분쟁에서 불리한 입장에 있는 의료 소비자들의 피해 구제보다는 의료분쟁으로 인한 의료인들의 피해를 방지한다는 의료보호라는 목표에 중점을 두고 있어 의료계의 입장이 강하게 반영되었고, 법체계상 기형적인 명칭과 변화에 역행적인 내용을 담고 있다는 비판 등으로 국회 관련 상임위에서 부결되거나 심의되다 폐기되는 과정이 반복되어 온 것이다.
최근 의원입법으로 제안된 ‘의료사고 예방 및 피해구제에 관한 법안’과 의료소비자 관련 시민단체들의 협의안인 ‘의료사고피해구제법안’은 과거법안의 문제점을 상당부분 극복한 내용이라 할 수 있다. 그러나 지금까지의 논의 과정으로 볼 때 두 법안 사이에도 논란이 될 만한 차이가 있고 의료분쟁의 이해당사자로부터 반발이 예상되는 내용이 있다.
그 중 의미 있는 것은 입증책임 전환, 진료기록 작성과 관련된 형사처벌, 종합보험에 가입한 경우 업무상 과실치상죄에 한하여 반의사불벌죄(피해자가 가해자의 처벌을 원하는 경우에만 형사처벌하는 범죄)로 하는 등의 형사처벌 특례, 무과실 보상 등이다.
실효성 있는 의료분쟁해결제도의 도입이 절실히 필요하다는 점에 대하여 모두가 오래전부터 공감하고 있으면서도 계속 법안이 표류하여 온 이유는 피해구제와 의료보호라는 두 가지 목표를 조화시킨 법안이 만들어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러한 법안이 되려면 우리 국민의 보편적인 의료관, 우리나라 의료체계 및 의료현실을 감안하여 객관성, 공정성 및 형평성을 보장하는 방향에서 의료사고의 진실을 어떻게 규명하고, 어떻게 쉽고 신속하고 적정하게 배상하며, 의료분쟁으로부터 의료행위의 안정성을 어떻게 보장할 것인가 등에 대한 합의점이 모색되어야 할 것이다.
과거 법안과 최근 만들어진 두 법안을 근간으로 피해구제와 의료보호라는 목표가 조화되고 객관성, 공정성 및 형평성을 보장하는 내용으로, 예를 들면 무과실 보상을 도입하면 입증책임전환을 도입하는 형태, 책임보험 강제주의를 도입하면 의료수가에 최소한 책임보험비용은 포함하는 형태 등으로 대부분 합의점을 찾을 수 있는 단계에 이르렀다고 본다.
이제 그동안 그 필요성에 대하여 모두가 공감하면서도 오랫동안 표류하여온 새로운 의료분쟁 해결 제도의 도입을 더는 미루지 말고 조속히 합의점을 찾아야겠다. 그래야 의료사고 피해자들의 고통과 피해의식 및 불신을 최소화하고, 의료인에게는 안정적인 진료를 보장하며, 의료분쟁으로 인한 사회적 비용을 최소화할 수 있을 것이다.
서상수 서로종합법률사무소 대표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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