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영화의 3대 거장으로 불리는 미조구치 겐지(溝口健二^1898~1956)의‘우게쯔 이야기’(雨月物語^1953)는남자들의 돈과 신분상승에 대한 덧없는 욕망을 우화적으로 표현하고 있다.
전국시대의 소용돌이 속에서 주인공 도공(陶工)은 돈을벌기 위해 혈안이, 이웃의 농민은 아내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사무라이가 되려 한다. 가족을 떠난 두 사람은 인생의 절정을 맛보나그사이도공의 아내는패잔병의 창에 찔려죽고, 농민의 아내는 술집 작부로 전락한다. 욕망의 부질없음과 가족의 소중함을 강조하는 이 작품은 대동아공영권이라는 환영(幻影)에 사로잡혀 끝없이 세력을 확장하다 패망의 비극을 맞은 일제(日帝)에 대한 자기반성이 담겨 있다.미조구치와 동시대를 살다간나루세 미키오(成瀨巳喜男^1905~1969)의 멜로영화‘부운’(浮雲^1955)도 전후 스산한 일본사회의 풍경을 그리고 있다. 전장에서 젊은 남편과 연인을 잃은 여자들이 한남자에 매달리는 모습은 전쟁이 초래한 시대의 아픔이다. 이 영화에서도 태평양 전쟁을 비롯해
일제가 부른 전화(戰禍)가 동아시아 국가뿐만 아니라 일본자신에게도 잊고 싶은 악몽이었음을 엿볼 수 있다.을사늑약 체결 100주년에 광복 60주년인 올해는‘한일우정의 해’였다. 그러나 과거의 아픔을 치유하고 발전적인 미
래를 열자고 다짐했던 두나라의 올해 관계는 우정보다는 반목에 가까웠다. 지난 시절의 악몽을 추억으로 되살리려는 일본 위정자들의 행보 때문이었다.
영화계에서도 우정을 다지기 위해 다채로운 행사가 치러졌으나 한일 사이에냉기가 감돈 탓인지국내 관객들의 반응은 신통치 않았다.지난달 열린 제2회
일본영화제의 객석점유율은 65%. 지난해 75%에 비해 많이처지는 수치이고, ‘우정의 해’를 기념해 대대적으로 준비한행사임을 감안하면 기대에 훨씬 못 미치는 결과이다.
영화는 당대의 시대상을 반영하는 거울이자 풍향계이다.전후 일본영화에는 자신들이 일으킨 전쟁에 대한 뼈아픈 회한이 스며 있었다. 그러나 시간이라는 망각의 장치가 작동하면서 일본 위정자들이 영화 속에 각인된 교훈을 잊고 과거의 허망한 영광에 사로잡힌 듯해 안타깝다. 영화를 가교 삼아‘가깝고도 가까운 나라’가될수있는 절호의 기회를 놓친 것이 못내 아쉬운 한 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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