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경이 무의미해진 세계화 시대지만 ‘장벽’은 오히려 높아지고 있다. 대표적인 예가 인도-방글라데시 국경과 팔레스타인 서안지구, 미국-멕시코 국경.
이들 지역의 테러와 밀수, 불법이민을 막겠다는 게 장벽 설치의 명분이다. 장벽을 원하는 부국에게는 보호장벽이지만, 장벽에 포위된 빈국에겐 차단의 경계인 셈이다. 지난 세기 냉전이 빚어낸 휴전선이나 베를린 장벽과는 대조적인 21세기형 갈등의 모습이다.
장벽 가운데 가장 긴 곳은 인도가 방글라데시 국경선에 설치하는 ‘만리철벽’. 28일 영국 일간지 더 타임스에 따르면 높이 3.6m의 이중 철책선으로 만들어진 이 시설의 총 길이는 만리가 조금 넘는 4,090km. 6년 전 공사가 시작돼 현재 2,100km에 철책선 설치가 끝났고, 내년 봄까지 서부 벵골 지역에 철책이 들어선다.
인도가 무려 10억3,800만 달러를 쏟아부으면서까지 만리철벽을 쌓는 배경은 방글라데시 출신 이슬람 민병대의 유입과 불법이민, 밀수의 방지. 방글라데시 불법 이민자는 연간 6만5,000명에 달하는데 철책 공사 이후 1만 명으로 줄었다. 하지만 인도에게 가장 예민한 사안은 방글라데시 출신 이슬람 민병대의 유입이다.
이들은 인도 북동부 아삼 등 3개 주의 이양을 요구하는데, 인도는 방글라데시 정부가 이들에게 은신처를 제공하고 있다고 보고 있다. 최근 방글라데시에서 폭탄테러를 일삼는 급진 이슬람세력의 부상도 인도가 장벽설치를 서두르는 까닭이다.
하지만 철책선의 최대 피해자는 수십 년간 벵골 문화와 언어를 함께 사용하며 정답게 살아온 양국의 국경 주민들. 비무장지대처럼 양국 국경선 사이의 137m에 이르는 지역이 무인지역화 하면서 이곳에 기반을 둔 인도인 10만 명은 이재민 처지가 됐다. 또 양국군이 총격전까지 벌이며 긴장을 높이자 주민들도 서로를 경계하고 있다.
팔레스타인 서안지구에는 이미 200km에 달하는 차가운 콘크리트 장벽이 들어섰고 앞으로도 440km가 더 설치된다. 이스라엘은 자살폭탄 방지를 내세워 예루살렘을 관통하는 이 장벽에 무려 1조2,800억원을 쏟아 붓고 있다. 그러나 이로 인해 수십만 명이 경제기반을 잃거나 이산가족이 되는 등, 장벽은 갈등과 분노의 땅에 새로운 반목의 불씨가 되고 있다.
이민자의 나라인 미국도 멕시코 국경에 불법이민 차단용 첨단 장벽을 설치하는 방안을 추진 중이다. 멕시코 국경선의 3분의 1이 넘는 1,130km에 장벽을 설치하는 법안은 하원을 통과해 상원에 계류 중이다. 매년 100만 명이 넘게 체포되는 이 지역 불법 이민자를 막겠다는 것인데, 멕시코는 이를 치욕스럽게 여기며 반발하고 있다.
이태규기자 tgle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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