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말 연시 극장가가 일대 격전지로 화하고 있다.
‘킹콩’ ‘태풍’ 두 대작이 치열한 맞대결을 펼치고 있는 가운데 작지만 강한 영화 ‘작업의 정석’이 예사롭지 않은 기세로 매섭게 틈새시장을 파고들고 있고, 여기에 ‘해리 포터와 불의 잔’이 여전히 시들지 않은 인기를 보이고 있다.
거기에다 또 다른 대형 기대작 ‘나니아 연대기: 사자, 마녀 그리고 옷장’과 ‘왕의 남자’, ‘청연’이 이번 주 동시 개봉한다. 평상시라면 하나하나가 박스오피스 1위에 오를만한 작품들이 이토록 한꺼번에 5~6편이 몰려 난타전을 펼치는 것은 전례가 드문 상황이다.
연말 대목의 기선을 잡은 것은 ‘태풍’이다. ‘태풍’은 지난 주말 서울에서만 21만 명의 관객을 동원하며 2주 연속 박스오피스 수위를 점했다. 전국 누계 관객 수는 325만 명. 그러나 갈수록 저력을 발휘해가고 있는 ‘킹콩’의 포효도 만만치 않다. 서울에서만 20만 명을 불러모으며 ‘태풍’을 턱밑까지 추격했다.
전국 누계 관객수는 215만 명으로 ‘태풍’에 한참 못 미치지만 3시간이라는 긴 상영시간을 감안하면 대단한 선전이다. 순제작비 31억원을 들인 ‘작업의 정석’도 지난 주 103만 관객을 끌어 모아 시장공략에 일단 성공했다.
그러나 이 와중에도 연말 개봉작들은 전혀 기 죽지 않고 단숨에 흥행고지에 오르겠다는 야심을 불태우고 있다. 이들은 나름대로 공략점도 찾아냈다. ‘태풍’은 “왠지 기대에 못 미친다”는 입 소문이 나고 있는데다,
‘킹콩’은 피터 잭슨의 빼어난 연출력과 첨단 테크놀러지에더 불구하고 리메이크 영화에다 긴 상영시간이 약점이라는 것이다. 예상 외의 선전을 펼치고 있는 ‘작업의 정석’은 유일한 로맨틱 코미디로 연인 관객을 유혹할 수 있는 장점이 있지만, 내용이 지나치게 가볍고 작품성이 떨어진다는 것이 이들의 분석이다.
하지만 개봉 예정작들도 그렇게 자신할 만한 상황은 아니다. 최초로 항공 장면을 담아내 한국영화의 새 경지를 개척한 ‘청연’은 주인공 박경원을 둘러싼 친일논란에 시달리고 있다. 판타지 대작 ‘나니아 연대기: 사자, 마녀 그리고 옷장’은 타깃 관객 층이 불명확하다는 점이, ‘왕의 남자’는 뛰어난 완성도에도 불구하고 ‘티켓 파워’를 지닌 스타가 없다는 것이 최대 약점이다.
‘난형난제’의 여러 작품들이 흥행대전을 벌이면서 스크린 잡기는 ‘하늘의 별 따기’가 돼 가고 있다.
국내 영화관의 전체 스크린 수는 1,504개(영화진흥위원회 집계). ‘태풍’은 300여 개의 스크린을 차지하고 있었으며, ‘킹콩’은 370여 개 스크린에서 상영된다. ‘작업의 정석’은 310개, ‘해리 포터와 불의 잔’은 150곳을 장기흥행을 위한 근거지로 삼고 있다. 이들 영화들만으로도 전국의 극장은 차고 넘친다.
‘나니아 연대기: 사자, 마녀 그리고 옷장’과 ‘왕의 남자’, ‘청연’이 개봉하는 이번 주는 그야말로 비집고 들어갈 자리조차 찾기 힘든 상황이다. 새로 개봉하는 세 편은 평상시 같으면 400여 곳 이상을 확보할 수 있는 작품 들. 그러나 대작 들이 펼치는 스크린 확보 전쟁 속에서 흥행고지를 향한 교두보를 확보하기가 녹록지 않다.
‘나니아 연대기’는 320개, ‘청연’과 ‘왕의 남자’는 각각 330개와 280개의 스크린을 확보하고 있다. 실제 스크린 수에 비해 이들 영화들이 확보하고 있는 스크린 수가 더 많은 것은 극장별로 이루어지는 교대상영 때문으로 분석된다.
소수 작품들이 전국의 극장을 점령하고 흥행대전을 펼치면서 관객의 선택의 폭은 좁아지고 있다는 우려도 나오고 있다. 예술영화는 고사하고 다양한 장르의 상업영화 들도 대작들의 위세와 배급사들의 마케팅 공세에 밀려 개봉을 내년으로 미루고 있다. 전국에 산재한 많은 극장 수에 비교해 영화의 다양성은 실종된 상태이다.
영화평론가 김영진씨는 “‘태풍’과 ‘킹콩’이 물량 공세로 거의 극장가를 양분했던 이 달 초와 같은 상황은 장기적으로 영화산업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 ‘왕의 남자’나 ‘청연’ 등이 돈의 논리가 아닌 완성도를 무기로 연말 흥행전선에 뛰어 든 점이 그나마 고무적이다”고 평가했다. 그러나 스크린 대전(大戰)은 쉽게 끝나지 않을 조짐이다. ‘킹콩’과 ‘태풍’ ‘작업의 정석’이 이미 장기 상영 채비에 들어갔고, 1월에도 기대작 들이 즐비하게 개봉을 기다리고 있기 때문이다.
백윤식 재희 주연의 ‘싸움의 기술’과 홍콩 뮤지컬 대작 ‘퍼햅스 러브’가 1월5일 스크린 전쟁에 합류하며, 유지태 권상우 주연의 ‘야수’가 12일, 설경구 송윤아가 출연하는 멜로 ‘사랑을 놓치다’와 이성재 최민수 주연의 ‘홀리데이’가 19일 개봉을 목표로 하고 있다.
류웨이장(劉偉强)이 연출하고 전지현 정우성이 나오는 ‘데이지’도 1월 개봉 예정이다. 배급사의 한관계자는 “연초에는 많은 영화들이 쏟아지지만, 소수 작품의 스크린 과점 현상이 설 연휴까지 이어질 것”이라고 전망했다.
라제기기자 wenders@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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