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占보는 정치권 "천하를 거머쥘 사주라는데 출마는 당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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占보는 정치권 "천하를 거머쥘 사주라는데 출마는 당연"

입력
2005.12.28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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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신의 미래만큼 사람에게 궁금한 게 또 있을까. 많은 사람들이 중요한 선택의 기로에서 역술인을 찾아 점을 치는 것도 그래서다. 하물며 예기치 못한 상황이 하루가 멀다 하고 벌어지는 우리 정치판에서랴.

점은 오래전부터 적지 않은 정치인들의 보이지 않는 이정표 역할을 해왔고, 이 같은 풍토는 지금도 마찬가지다. 특히 지방선거가 실시되는 새해엔 자신의 당락 등을 알아보려는 정치인과 지망생들이 역술인들 집 앞에 장사진을 칠 게 불문가지다.

한 여당 중진 A의원의 회관 사무실 문은 언제나 굳게 닫혀 있다. 방문자가 들어와 문을 완전히 닫지 않으면 얼른 비서가 나와 다시 닫는다.

A 의원은 검찰수사를 받는 등 좋지 않은 일이 반복되자 역술인을 찾았는데 “사무실이 중앙 엘리베이터와 통하는 복도 한 복판에 있는 탓에 방안의 좋은 기(氣)가 새어나가고 대신 나쁜 기가 들어온다”는 말을 들었다. 그 뒤로는 한 여름에도 방문을 닫고 지내고 있다.

정보통으로 유명한 야당 중진 B 의원은 일이 있을 때마다 3명의 유명 역술인과 상담을 한다. 세 명의 의견이 자신과 같을 때는 그대로 밀어 붙이지만 1명이라도 의견이 다르면 생각을 다시 해본다.

다른 중진 C 의원은 용하다는 역술인이 있으면 서울이고 지방이고 가리지 않고 찾아 다닌다. 그는 “정치공학적 분석이나 판단보다는 점을 더 믿고 이를 따른다”고 털어놓았다.

내년 지방선거에 출마예정인 야당의 D의원은 한 사찰의 주지스님을 만난 자리에서 “천하를 거머쥘 사주”라는 말을 듣고 출마의지를 더욱 굳게 다졌다.

그러나 이런 이야기가 언론에 보도되자 평소 다니던 교회 관계자로부터 “기독교 신자가 미신을 믿는다”고 핀잔을 들었다는 후문이다. 정계를 은퇴한 E씨의 부인도 역술인이 18대 국회에서 다시 의원 배지를 달 수 있다는 말을 듣고 고무돼 있다고 한다.

그래서 ‘정치 전문 역술인’도 등장했다. 역술인 남덕씨는 정치인 150여명과 인연을 맺고 있다. 이들은 정치적 고비 때마다 상담을 요청하는데, 남의 시선 때문에 제3의 장소에서 본인 또는 가족과 직접 만나기를 원한다. ‘복채’ 인 상담료는 수십만원에서 수백만원까지다.

또 정치권에서 많이 찾는 역술인들로는 예명으로 알려진 ‘목동 아지매’와 ‘이촌동 아줌마’가 꼽히고, 의류회사를 운영하는 여성과 사주풀이에 능한 압구정동의 현직 의사에게도 정ㆍ관계 인사의 발길이 잦다.

정치권과 점집의 ‘유착’ 사례도 있다. 1992년 김영삼 전 대통령이 민자당 대선 후보가 되자 여권이 당시 정보기관을 총동원해 유명 역술인 등을 통해 ‘YS 대세론’을 전파토록 했다는 얘기는 유명하다. 정주영 당시 국민당 후보측도 역술·무속계를 파고들어 “양김 시대는 끝나고 정도령 시대가 왔다”는 ‘천운순환론’을 펴기도 했다.

그러나 대선 등 큰 이벤트일수록 역술인들의 적중률이 떨어진다는 게 공통된 의견이다. 김일성 주석의 사망을 예언한 여성 무속인 심진송씨도 지난 대선을 앞두고 “여성대통령이 탄생될 것이고 운세로만 보면 정몽준-이회창-노무현 후보 순”이라고 말했지만 결과는 정반대였다.

차기 대선과 관련해서도 역술인들의 입을 빈 소문들이 난무하고 있다. 여당 주변에서 “정주영은 실패한 정도령이고 진짜 정도령은 정동영 장관”이라는 소문이 있고, “2007년 김근태 장관의 운이 하늘을 치솟아 대권을 차지한다”는 얘기가 있다.

야당에서는 박근혜 대표의 뒤를 박정희 대통령이 보살펴 주고 있어 아버지가 못다한 일을 마무리 한다는 점괘와 함께 다음 대통령은 물을 잘 다스리는 이씨(이명박 시장을 지칭)가 된다는 말이 나도는 등 중구난방이다.

정치와 점은 이렇듯 묘한 공생 관계지만, 역술인 남덕씨는 “점에 앞서 먼저 통용되는 게 상식이므로 상식적인 활동이 정치적으로 가장 큰 도움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염영남 기자 liberty@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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