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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준만 칼럼] 급진적 보수, 보수적 급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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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준만 칼럼] 급진적 보수, 보수적 급진

입력
2005.12.28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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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냉전(冷戰)’은 미국 칼럼니스트 월터 리프맨이 만들어낸 단어이다. 이른바 ‘모순어법’의 대표적 예다. 전쟁은 뜨거운 법인데, ‘차가운 전쟁’이라니 그게 말이 되나? 상식적으로 도저히 어울리지 않는 두 단어를 결합시켜 새로운 의미를 창출해내는 데에 모순어법의 묘미가 있다.

경상대 장상환 교수가 번역한 로버트 하일브로너의 ‘세속의 철학자들’이라는 책엔 모순어법의 세속적 교훈을 시사해주는 대목이 나온다. 하일브로너는 좌파 급진경제학자 가운데 대표적 인물이었지만 자신을 ‘급진적 보수주의자’라고 불렀다.

무슨 놈의 수식을 하건 보수면 보수지, ‘급진적 보수’라니! 그렇게 짜증 낼 일은 아니다. ‘급진적 보수’는 ‘따뜻한 보수’니 ‘온정적 보수’니 하는 말장난과는 다르다.

●적대적 이념갈등 언제까지…

하일브로너의 설명은 이렇다. “자본주의를 역사적 조건과 끊임없는 변화의 과정 속에서 보고, 사회주의라고 불리는 평등을 향한 여러 변화를 지지한다는 점에서 나는 급진주의자다. 그러나 제도적 변화로 모든 문제가 해결될 것이라고는 믿지 않는다는 점에서는 보수주의자다.”

이 말 속에 의미심장한 뼈가 있다. 하일브로너는 실천과 실행의 어려움을 이야기하고 있다. 머릿속에서야 무슨 혁명과 개혁인들 못하랴. 그걸 현실세계에서 성공시키기 위해 어떤 자세를 취할 것인가? 여기에서도 열정과 당위 일변도로 나간다면 그 사람은 ‘급진적 급진’이요, 차갑고 지혜롭게 접근한다면 ‘급진적 보수’라 할 수 있겠다.

그 반대도 가능하다. 보수 가치를 옹호하기 위해 과감한 개혁을 주장하는 이가 있다면, 그 사람은 ‘보수적 급진’이라 부를 수도 있으리라. 보수 가치를 옹호한답시고 죽으나 사나 보수만 붙들고 늘어진다면, 이는 ‘보수적 보수’라 할 만하다.

한국엔 ‘급진적 급진’이라 할 만한 정치세력은 없지만, 한국 실정에 맞게 상대적 개념으로 이해하면 우리에게도 시사하는 바가 없지 않다. 우리는 한국사회의 이념 갈등을 ‘보수_진보’의 이분법으로 보려는 경향이 있다.

그러나 그런 이분법은 ‘급진적 급진’과 ‘보수적 보수’ 사이의 ‘적대적 공존’만을 강화시킬 뿐이다. 둘 사이에 존재하는 ‘급진적 보수’와 ‘보수적 급진’을 죽이기 십상이다.

한국사회의 이념 갈등은 자기 존재 증명에 급급하다. 남들에게 보여주는 용도가 우선이라는 뜻이다. 결과보다는 의도가 더 중요하게 여겨진다. 성공에 신경 쓰면 성과주의라고 욕먹는다. 의도만 앞세우다 실패해도 변명거리는 많다. 수구 기득권 세력이나 좌파의 저항, 방해공작 때문이라는 모범답안이 준비돼 있다.

그 모범답안은 상대편에 대한 적대감을 키우고 우리 편의 결속을 다지는 데에 매우 유용하다. 이념 갈등이 원래의 뜻과는 무관하게 양쪽의 ‘기(氣) 싸움’이나 ‘밥그릇 싸움’으로 전락하곤 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역사적 업보' 체념의 지혜를

왜 그렇게 되었을까? 역사에게 미안하지만, 이 또한 역사 탓이다. 구체적으로 말하자면, ‘진보 죽이기’를 안보정책으로 삼은 독재정권 탓이다. 이 땅에서 ‘진보’를 하는 데에 가장 필요했던 덕목은 양심, 용기, 열정이었다.

그거면 족했다. ‘보수’도 머리를 쓸 필요가 없었다. 자신의 안전과 번영 욕구에 충실 하는 것으로 족했다. 그런 세월이 한 세대 이상 지속했다. 자유롭게 ‘진보’와 ‘보수’를 할 수 있는 세상이 됐지만, 온몸에 프로그래밍이 된 성향과 기질은 그대로다.

역사의 업보엔 체념의 지혜가 필요하다. 체념은 포기가 아니다. 행여 자학을 하지 않기 위해 자신이 물려받은 조건과 환경을 제대로 아는 일이다. 그런 의미에서 체념은 희망의 시작이다. 앞으로의 이념 갈등은 ‘급진적 보수’와 ‘보수적 급진’ 사이의 대결 구도로 가리라는 희망이다. 그런 희망으로 새해를 맞자.

전북대 신방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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