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배에서 나온 자매임에도 매기(카메론 디아즈)와 로즈(토니 콜레트)는 T팬티와 ‘면 빤스’의 간극처럼, 몸과 두뇌가 극과 극이다. 언니 로즈는 외모는 볼품 없지만 법률회사의 잘 나가는 변호사다. 반면 매기는 뭇 남성의 시선을 끌 얼굴과 ‘S라인’을 과시하나 머리는 텅 비었고 게다가 사고뭉치다. 서로 상반된 성격과 외모의 자매는 사사건건 티격태격 부딪힌다.
언니와 하룻밤을 보낸 남자의 사진을 보며 매기가 “맛있겠다”(Yummy)라는 망측한 말을 연발하고, 오랜만에 죽이 맞은 자매가 여성의 성기를 소재로 질펀한 농담을 주고 받는 도입부를 보자면 ‘당신이 그녀라면’ (원제 In Her Shoes)은 영락없이 그만그만한 로맨틱 코미디의 한 변형으로 여겨진다. 그 동안 통통 튀는 연기를 주로 선보여온 카메론 디아즈가 출연했으니 그런 심증은 더욱 굳어진다.
그러나 착각이다. ‘당신이 그녀라면’ 은 겉포장과 달리 매우 진중하나 시종 유머를 잃지 않는, 상당한 짜임새를 갖춘 드라마다.
매기가 언니의 남자 친구와 관계를 맺으면서 두 자매의 갈등은 폭발한다. 언니 집을 나온 매기는 냉랭하기 그지없는 새 엄마가 버티고 있는 집에도 돌아가지 못한다. 갈 곳 없던 매기는 우연히 외할머니(셜리 맥클레인)가 살아있음을 알게 된다. 그리고 외할머니를 찾아간 매기는 언니가 죽은 엄마를 대신해 자기를 보살펴 왔다는 사실을 조금씩 깨닫게 된다.
위기의 자매가 화해의 접점을 찾아가는 과정은 많은 상징들과 사연을 동원해 세련되게 묘사된다. 로즈의 옷장을 가득 채운 구두들은 동생 때문에 엄마로서 살며 억눌러야 했던 욕망의 표상이다. 철없는 매기가 언니의 구두로 인생을 즐기면서도 고마움을 느끼지 못하는 것과 대조를 이룬다.
난독증이었던 매기가 로즈의 결혼식 날 축시를 읽어주는 장면도 상징적이다. 언니는 결혼을 함으로써 엄마의 짐을 털어내고, 동생은 진정한 어른으로 다시 태어나 인생 2막을 열게 됨을 잔잔하게 드러낸다.
‘LA 컨피덴셜’과 ‘8마일’ 등 수작들을 선보여온 커티스 핸슨이 감독했다. 골든글로브 여우주연상을 네 차례나 수상한 원로배우 셜리 맥클레인의 연기도 눈길을 끈다. 1월5일 개봉. 15세.
라제기기자 wenders@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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