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통화기금(IMF)이 생활고에 직면했다. 국제금융 환경이 IMF가 돈 벌기에는 점점 빠듯하게 변하고 있기 때문이다. 별 반전이 없으면 매년 들어가는 10억 달러 정도의 운영비 마련조차 힘들 것이라는 전망 이 나온다.
IMF의 돈줄은 금융위기에 처한 국가에 긴급자금을 빌려주면서 받는 이자가 대부분이다. 재작년(회계연도 기준)까지는 그런대로 괜찮았다. 그러나 지난해부터 세계경제가 안정되고 견실한 성장세를 이어가면서 돈을 꾸겠다는 나라들이 없어졌다. 1980~90년대에는 호된 외환위기를 겪은 아시아와 남미가 IMF의 봉 노릇을 해왔다. 그런데 이들 나라는 호된 ‘IMF 처방’을 받고, 재기에 성공한 뒤에는 IMF 쪽에 눈길조차 주지 않으려 한다. 오히려 빌린 자금을 조기에 갚겠다고 해 IMF를 난감하게 하고 있다.
남미의 대표적인 두 채무국인 브라질과 아르헨티나는 최근 각각 155억 달러, 100억 달러를 조기 상환키로 했다. 지난해 4월 기준으로 IMF에 미상환된 차관은 900억 달러. 이 중 70% 이상이 브라질 아르헨티나 터키 인도네시아 4개국에 집중돼 있다. 그러나 지난달 말 미상환액이 660억 달러로 줄어들었다. 여기에 두 나라가 추가로 막대한 자금을 갚겠다고 나서 것이다. 이제 우루과이가 중남미 최대 IMF 차관국이 됐으나 액수는 미미하다. 반면 신규대출은 지난해 25억 달러에 그쳐 70년대 말 이후 가장 낮은 수준이다.
돈줄이 죄이자 IMF 내에선 여러가지 ‘자구책’이 거론되고 있다. 채무국에 이자를 더 높게 물리자는 것에서부터 현재 68억 달러 정도인 보유자금에서 운영비를 갖다 쓰자는 의견, 자금을 출자한 주요 선진국에 지불하는 이자를 낮추자는 것 등이다. 그러나 이는 그야말로 임시방편이다. 가까운 시기에 지구촌 어딘가에서 금융위기에 빠지는 나라가 없는 한 IMF의 살림살이가 좋아질 여지는 별로 없다.
세계 금융시장을 안정시키기 위해 존재하는 IMF가 금융위기를 은근히 바란다는 것은 역설적이면서 기묘하다. 로드리고 라토 IMF 총재는 “앞으로 5~7년은 버틸 수 있을 지 모르나 더 이상 국제금융 위기가 오지 않으면 심각한 상황에 봉착할 수 밖에 없다”고 토로했다. IMF 수석분석가로 일했던 케네스 로고프 하버드대 교수는 “호시절이 몇 년 더 계속되면 IMF는 정말 심각해질 것”이라고 경고했다.
전문가들은 IMF의 수익다변화 등 체질개선을 주문하고 있다. 우선 보유하고 있는 금을 재평가해 장부상 건전성을 높이고, 대출의존 구조에서 벗어나 장기 국채에 투자할 것을 권하고 있다. 재정ㆍ금융 정책이나 국가 통계 등 IMF가 제공하는 서비스에 수수료를 물리는 방안도 제시됐다. 그나마 금 재평가는 빈국에 대한 빚 탕감과 맞물린 민감한 사안이어서 논란거리로 남아 있다.
IMF는 2차 대전 직후 각국 통화가 지불수단으로의 역할을 못하는 상황에서 교역의 위험을 담보한다는 게 설립 당시 목적이었다. 그러나 마셜플랜, 제2 브래튼우즈 체제 등을 거치면서 파산국가에 대한 구제금융으로 임무의 무게가 옮겨갔다. 세계경제가 성숙할수록, IMF가 설 자리가 좁아진다는 역설이 그래서 나온다.
황유석기자 aquarius@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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