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해를 마감하며 돌아볼 때, 올해 가장 뜻 깊었던 일은 호주제 폐지이다. 지난 3월 2일 국회 본회의에서 호주제 폐지를 담은 민법 개정안이 통과됨으로써 1958년 민법 제정 당시부터 논란이 되어왔던 호주제를 마침내 역사의 뒤편으로 보낼 수 있게 된 것이다. 가족법 개정운동 50년 만에 이룬 쾌거였다.
일부 호주제 존치론자들은 호주제를 없애면 마치 현재의 가족들이 모두 해체될 것처럼 그릇되게 선전해 왔지만, 호주를 기준으로 하는 현재의 호적제도를 폐지하고 새로운 신분기록부를 만든다고 해서 가족이 그저 해체되는 일이란 있을 수 없다.
호주제 폐지에 따라 호적을 없애고 새로운 신분등록법에 의거, 일인일적(一人一籍)의 ‘신분등록부’(가칭)를 만드는 일은 유예기간을 거쳐 오는 2008년부터 시행된다.
현재 법무부에서는 ‘국적 및 가족관계 등록에 관한 법률’이라는 이름으로 법안을 마련했고, ‘신분 공시’와 관련하여 논의 초기부터 ‘신분’이라는 말이 주는 구시대적 어감 때문에 이 낱말을 대체할 다른 적합한 용어를 찾기 위해 애썼던 것으로 안다. 하지만 현재 마련된 이 법안의 이름은 법 제정의 취지와 거리가 있어 보인다.
개인 신상을 기록하는 데 ‘국적’을 포함하는 것은 세계화 시대이고, 국제결혼이 증가하고 있는 현실에 비추어 앞으로 필요한 것으로 보이지만 신중한 접근이 필요하다. 또한 ‘신분’을 대체하는 용어로 ‘가족 관계’를 사용하는 것은 일인일적제의 본뜻에서 상당히 벗어나는 것이다.
그리고 혼인 증명, 출생 증명 등에 이어 ‘상세 증명’을 둔다는데 이것은 또 무엇인지, 이러한 것들이 공시의 편리함과 더불어 개인의 사생활을 적극 보호하겠다는 법의 취지에 적합한 것인지 등에 대해서도 전문적인 논의가 필요할 것으로 본다.
일각에서 관련 업무의 관장을 둘러싸고 논란이 있는 것도 매우 적절치 않아 보인다. 국민의 편에서 어떤 방향이 가장 효율적인가에 대한 진지한 논의로 보기 어렵다는 점에서 그러하다. 편 가르기 혹은 힘겨루기 식으로 접근해서는 매우 곤란하다.
2008년까지는 실제 제도를 운용하기 위한 준비기간으로 그리 넉넉한 시간은 아니기 때문에 하루속히 시행안을 마련해 국민이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적극 홍보해야 할 것이다. 불필요한 논쟁을 지양하면서 건전하고 의미 있는 토론을 통해 바람직한 결론을 도출하려는 노력이 절실하다.
곽배희 한국가정법률상담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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