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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호철의 정치논평] 황우석 사태와 삼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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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호철의 정치논평] 황우석 사태와 삼성

입력
2005.12.27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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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도 많았던 황우석 사태는 거대한 대국민, 아니 세계적 사기극으로 대단원의 막을 내려가고 있다. 안타까운 일이다. 그러나 황우석 사태는 단순히 그 진실이 무엇인가 하는 문제를 넘어서 우리 사회에 대해 정말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한다.

황우석 사태는 여러 면에서 우리 사회의 진면목을 속속들이 내보여준, 2005년 현재 한국 사회의 종합 드라마 내지 종합 보고서이다.

우선 과정이 중요한 자연과학의 연구에서 과정과 연구의 윤리 문제를 무시하고 결과만 만들어 성과를 과시하려 했던 ‘빨리빨리주의’로부터, 이 같은 성과에 대해 제대로 된 검증을 하지 않고 황 교수를 국민적 영웅으로 키우며 무제한의 지원을 아끼지 않았던 정부의 졸속 과학정책과 청와대의 무능, 이 같은 영웅 만들기에 함께 앞장섰던 주류 언론과 이에 열광했던 국민의 집단적 최면, 황 교수의 문제점을 파헤친 MBC PD수첩을 국익을 손상시키려는 좌파의 음모로 몰고 간 조선일보와 주류 언론의 색깔공세, 이에 동조해 PD수첩에 가해진 국민적 이지메, 그 과정에서 드러난 PD수첩의 결과 지상주의적인 잘못된 취재관행, 황 교수를 구하기 위해 난자 1,000개를 기증하겠다고 나선 여성 자원봉사자들의 순수한 그러나 정제되지 않은 열정, 사태가 황 교수에게 문제가 있는 쪽으로 변해가자 그간의 ‘MBC 죽이기’에서 ‘황우석 죽이기’로 재빨리 변신한 조선일보의 기회주의 등 그 예는 무궁무진하다.

●2005 한국사회의 종합판

아무리 뛰어난 소설가나 논픽션 작가에게 2005년 현재 한국 사회의 심층을 한 폭의 드라마로 그려 보라고 할 때 황우석 사태보다 뛰어난 드라마를 그려 내는 것을 불가능하다. 한마디로 역시 사실이 픽션보다 더 기이하다는 것을 이번 사태는 다시 한번 보여준 것이다.

노성일 미즈메디병원 이사장이 황 교수의 연구에 대한 충격적인 폭로를 하고 이에 황 교수가 반박 기자회견을 하던 날 나는 학술회의 관계로 미국의 로스앤젤레스에 머물고 있었다. 동포들은 국내보다도 오히려 황우석 사태에 관심이 있어 만나는 사람마다 노씨의 폭로로 거의 정신적 공황상태에 빠져 있었다.

외국에 사는 만큼 국가의 위신이 중요했던 것이다. 그 결과 모두 차를 몰고 다니는데다가 음주 단속이 심해 평소 술을 잘 마시지 않는 것이 재미 동포 사회임에도 이날 코리아타운의 술집들은 황우석 사태의 충격을 달래기 위한 동포들로 넘쳐 났다.

그런데 옆자리에서 술을 마시고 있던 한 사람이 “이번 사태는 모두 삼성의 음모”라며 목청을 높이는 것이었다. 솔깃하여 귀를 쫑긋 세우고 귀동냥을 해보니 황우석 연구가 가짜라는 엄청난 뉴스를 터뜨림으로써 전날 발표한 검찰의 삼성 등 국정원 도청 테이프 사건 관련자들에 대한 무혐의 처리가 국민의 질타를 받고 여론화하는 것을 막기 위해 노씨가 삼성의 사주를 받고 이를 터트렸다는 주장이다. 한마디로 유치한 3류 음모론이다.

●그 와중에 묻혀진 X파일

그러나 비록 음모론이 틀린 것이지만 황우석 사태의 최고의 수혜자는 복제세포 연구 분야의 외국인 경쟁자들이 아니라 삼성, 그리고 검찰이라는 것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검찰이 충격적인 삼성 관련 X 파일에 적나라하게 나타난 정계, 재계, 언론, 그리고 검찰 간의 검은 유착관계에 대해 뻔뻔스럽게 면죄부를 줬음에도 불구하고 연이어 터져 나온 황우석 사태라는 핵폭탄에 묻혀서 이 문제는 국민의 관심과 사회적 의제에서 사라져 버린 것이다. 역시 삼성은 운까지 좋은가 보다.

황 교수 사태로 우리는 국제적 신뢰 등 많은 것을 잃었다. 그러나 정작 가장 큰 손실은 삼성 X 파일에 나타난 검은 정ㆍ경ㆍ언ㆍ검 유착구조에 철퇴를 가할 기회를 잃어버린 것이다. 광복 60주년이라는 2005년도 이렇게 가니, 안타깝고 또 안타까운 일이다.

서강대 정외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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