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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터 지키는 세 남자의 든든한 세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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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터 지키는 세 남자의 든든한 세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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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12.27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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망년회다 송년회다 들뜬 마음으로 한 해를 정리하는 요즘. 사람들은 최선을 다했든 아니든올 한 해를 돌아보며 지인들과 모여 웃음소리가 끊이지 않는다. 이런 때일수록 가족 생각이각별해지기 마련이다. 하지만 크리스마스 연휴와 연말도 반납한 채 중동의 건설 현장에서,태평양의 망망대해에서 땀을 흘리는 이들이 있다. 또 묵묵히 일터를 떠나지 않고 뱃길을 밝혀주는 이도 있다. 이들은 남들이 가족끼리 행복을 나누고 있을 때 현장을 지켜야 한다.오히려 무거운 책임감과 사명감을 상기하며 치열하게 한해를 마감한다. 그런 한국인들이 있기에 우리의 겨울은 더욱 훈훈하고 든든해진다. 멀리서 특별한 연말을 맞는 세 남자의 이야기를 소개한다.

■ "세계 最高 건물 공사 자부심에 삽니다"

“내년이 개띠 해라는 걸 지난 주에 처음 알았습니다. 제가 또 개띠(1970년생)거든요. 정신이 없이 하루하루를 보내다 보니 그런 생각을 할 겨를이 없었나 봐요. 계절 변화를 모르고 살아 한 해가 간다는 실감이 잘 나지 않습니다.”

삼성건설 해외건축팀 강정욱(35) 대리는 26일 전화 통화에서 한 해를 보내는 소감을 이렇게 말했다. 강 대리는 올 2월부터 아랍에미리트(UAE)의 수도 두바이 인근 신시가지 15만 평에 ‘버즈 두바이(Burj Dubai)’를 건설하고 있다. 아랍어로‘두바이 탑’이라는 뜻의 건물은 2008년 완공되면 지상 160층에 높이 700여m로 대만 타이베이금융센터(TFCㆍ508m)를 훨씬 능가하는 세계에서 가장 높은 건축물이 된다.

그는 지난해 4월 입찰에서부터 현장 시공까지 근 2년간 이 프로젝트의 산파역을 맡았다. 공식 직함은 ‘기술책임자(Chief Engineer)’로 공정을 관리하고 하루에 투입하는 2,500명의 현장 노동력을 진두지휘하는 중간 관리자다. “공정률이 10%가 채 안 돼 아직 건물 윤곽도 잡히지 않았지만 순조롭게 진행되고 있습니다.”

강 대리는 1995년 영남대 건축공학과를 졸업하고 삼성건설에 입사한 이후 줄곧 해외 건설 현장만을 누볐다. 95년 싱가포르 페블베이 콘도미니엄을 시작으로 말레이시아 페트로나스 타워, 홍콩, 중국, 앙골라 등 삼성의 굵직한 해외 건설 현장에는 늘 그가 있었다. “입사 당시만 해도 해외 현장에는 한국인 기술 인력이 많지 않아 해외 업무는 생각도 안 했지요. 그냥 경력이나 쌓자고 시작한 일인데 10년이나 지났네요. 하하.” 부인 이현경(34)씨를 처음 만난 곳도 싱가포르다.

“지상에서 10m만 위로 올라가도 후끈거리는 사막의 모래 바람이 끊임없이 얼굴을 때립니다. 아래를 내려다 보면 흉기나 다를 바 없는 각종 장비가 즐비하지요. 아침 7시부터 밤 9시까지 촉각을 곤두세우다 보면 진이 다 빠집니다.” 다행히 찰과상에 그치기는 했지만 떨어진 철근을 피하다 아찔한 순간을 겪기도 했다.

개띠로 병술년을 맞는 각오가 새롭다. “해외 생활을 오래 하다 보니 한국인의 우수성을 새삼 깨닫게 됩니다. 내년 2월 본격적인 층 쌓기 공사가 시작되면 현지인들은 자고 일어날 때마다 하늘을 향해 쭉쭉 뻗는 건물에서 ‘건설 강국 코리아’의 힘을 느끼게 될 것입니다. 한국에서 연말에 시끄러운 소식이 많이 들리는데 그런 이미지가 이곳까지 미치지 않도록 여기 있는 동료 20여 명이 노력해야겠지요. 또 외국 생활에서 배워야 할 것이 무궁무진하다는 것을 느낍니다. 성찰의 시간도 가지면서 틈틈이 아내와 미래도 설계해야겠고요.”

김이삭기자 hiro@hk.co.kr

■ "펄떡펄떡 뛰는 참치 보면 고생 잊어"

“참치 한 마리 잡으려고 30일간 항해만 한 적도 있습니다. 그러니 참치캔 반만 드시고 버리지 마세요. 껄껄~. 새해에는 더욱 더 맛좋은 참치를 국민 식탁에 올릴 수 있도록 치열하게 배를 몰겠습니다. 사랑하는 신부가 보고싶지만 만선의 기쁨과 뱃사람의 사명감으로 이겨내고 있지요, 하하~.”

남태평양 솔로문 군도 인근 남위 08도, 동경 165도 망망대해에 떠 있는 동원산업 원양어선 유니버스김호(1,400톤급ㆍ길이 70mㆍ승무원 24명). 지난 26일 저녁 위성전화를 타고 들려오는 김민호(34) 선장의 목소리는 호탕하면서도 집에 대한 그리움이 가득했다.

“어제 성탄절에는 통닭과 맥주로 조촐한 선상 크리스마스 파티를 열었습니다. 우리는 일요일이 따로 없지요. 한 달에 한 번씩 목표량 700톤의 참치를 잡는 날이 쉬는 날입니다. ‘불멸의 이순신’‘제5공화국’ 같은 방송 비디오를 보거나 책도 읽지요. 집사람과 여행 갔던 사진도 보고 이메일도 보냅니다. 인터넷은 요금이 너무 비싸서 안 합니다.”

2005년이 5일밖에 남지 않은 이날도 김 선장은 망루에 올라 참치 어군을 찾는다. 망원경으로 보면 16km까지 보인다. “사람보다 갈매기가 참치를 먼저 찾습니다. 참치와 갈매기 모두 멸치를 먹고 살지요. 참치의 공격을 받으면 멸치떼가 물위로 튀어 오릅니다. 이 놈들을 갈매기가 잡아먹지요. 이때부터 가슴이 두근두근합니다. 펄떡펄떡 뛰는 웅대한 옐로우핀(평균 길이 1.5m, 무게 50kg)떼를 쳐다보면 정말 장관입니다.” 어군탐지기로 정확한 지점을 탐지하는 것은 그 다음 일.

거친 바다 생활의 고단함은 한 잔의 소주와 참치회로 푼다. “약간 언 얼음 녹는 맛이 나는 횟집과 다릅니다. 바로 잡아 찹살떡처럼 쫀득쫀득하지요. 아무리 설명해 드려도 모르실 겁니다….”

그는 부산 영도가 고향이다. 부산수산대(현 부경대)를 나와 13년간 배를 탔다. 올해 가장 큰 수확은 평생배필을 만난 것. 지난 6월 같은 회사(동원산업) 수산팀 직원인 갈경아(24)씨와 결혼했다. “결혼 후 두 달쫌 지나 바다로 돌아가 아쉽지만 직업이 그러니 어쩔 수 없습니다. 그래도 보통 1년 반 만에 귀항하는데 우리는 선체 수리 때문에 내년 3월 한국으로 가니 행운이지요”.

그는 새해 각오를 높이 오를수록 삼을 캘 가능성이 커지는 심마니에 비유했다. “얼마 전에는 중국, 대만, 일본, 미국 배들과 동일한 어군을 발견해 어마어마한 경쟁을 한 적이 있습니다. 전쟁터가 따로 없지요. 우리 회사 참치선이 14척이니까 우리 제품 14캔 중 하나는 저희가 잡은 것인 셈이지요. 거기서 자부심을 찾습니다. 하하~.”

박석원기자 spark@hk.co.kr

■ "마라도 관광객 많이 찾아 외롭지 않죠"

“등대는 더 이상 외로운 곳이 아닙니다. 첨단기술이 집약된 곳이고, 아름다운 자연 풍광을 감상하러 연간 수십 만 명이 찾는 관광명소지요.”

대한민국 최남단 마라도 등대를 지키는 김석천(43) 마라도항로표지관리소장의 등대 예찬론이다. 그는 26일 아직도 등대를 외롭고 쓸쓸한 곳으로 보는 인식이 안타깝다고 했다.

등대가 밤에 불빛만 깜박거린다고 생각하면 오산이다. 항로표지만 해도 광파표지(빛) 외에 ‘무(霧)신호’라고 하는 음파표지(소리), 오차 범위 1m 이내의 정보를 정확히 제공하는 위성항법시스템(DGPS)을 활용한 전파표지까지 다양하다. “모든 시스템이 자동화, 전산화돼 있기 때문에 ‘등대지기’란 표현은 이제 어울리지 않습니다. 등대 근무자는 시설ㆍ기기 관리 및 기상ㆍ해양 관측 업무를 하고 있지요.”

섬(우도)에서 나고 자라 원양어선을 타고 5대양을 누비는 꿈을 꾼 그이지만 집안의 반대에 부딪혔다. 그러나 바다를 떠나기 싫어 81년 등대원 임용공고를 보고 지원했다. 이후 우도, 추자도, 산지, 마라도 등대를 거치며 근 20년을 근무한 베테랑이 됐다.

“딱 500% 바뀐 것 같아요. 80년대만 해도 등대 업무보다 섬 생활 자체가 힘들었습니다. 교통편이 드물어 생필품을 구하기도 어려웠고, 발전용 기름을 부둣가에서 유류저장소까지 옮기는 일만 해도 이만저만한 일이 아니었거든요.”

요즘은 주 5일 근무제로 1주일에 한 번은 집(제주시)에 다녀온다. 다만 3명이 순환 근무하는 시스템이라 기념일이나 가족 생일을 꼬박꼬박 챙겨줄 수 없어 아내(김정희ㆍ42)와 세 자녀(2남 1녀)에게 미안한 마음이란다.

김 소장은 이번 연말연시에도 꽤나 바쁠 것 같다. 새해 일출을 보려고 전국에서 몰려드는 500~600명의 관광객을 맞이해야 하기 때문이다. “첨단화됐다고는 하지만 등대는 기본적으로 안전한 항해를 돕는 바다의 안내자입니다. 내년에도 올해처럼 마라도 인근을 지나는 배들이 한 건의 사고도 없었으면 합니다. 그리고 직원들, 직원 가족들이 다 건강했으면 합니다.”

김이삭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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