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민 전용철, 홍덕표 씨 등 2명의 사망 원인이 경찰관의 과잉진압에 따른 것이라는 국가인권위원회의 결론은 허준영 경찰청장 취임 이후 인권경찰을 표방해 온 경찰에게는 사망선고나 다름없다.
경찰은 당초 “경찰의 폭력적 진압 때문에 사망했다”는 농민단체들의 주장을 일축해 왔다. 이후 자체 조사에서 과잉진압 사실이 드러나자 경찰은 뒤늦게 잘못을 인정, 서울경찰청 이종우 기동단장을 직위 해제하는 고육책을 썼다.
그러나 경찰 수뇌부 문책을 주장하는 농민들의 요구에 대해서는 “인권위 조사결과를 기다려 보자”며 애써 외면해 왔다. 그런데 26일 인권위가 경찰의 책임을 인정함에 따라 경찰의 입지는 좁아질 수 밖에 없다는 지적이다.
인권위의 조치가 서울경찰청장과 차장, 경비부장을 경고하고 서울경찰청 기동단장을 징계하도록 권고하는 수준에 그쳤지만 경찰의 수장인 허 청장이 책임을 피하기는 힘들 것으로 보인다.
이와 관련, 심상돈 인권침해조사1과장은 “이번 조치는 현장 사태와 관련된 지휘책임만을 물었고 경찰청장의 정치적, 도의적 책임부분은 인권위에서 판단할 사안이 아니다”라고 밝혔고, 향후 청와대와 정치권에서도 허 청장의 경질을 둘러싼 논란이 더욱 거세질 전망이다.
청와대는 “경찰청장 임기가 있어 어떻게 처리해야 할지는 정해지지 않았지만, 허 청장이 사의를 표명하면 수리하겠다”고 밝혀 허청장을 압박했다.
더욱이 인권위는 검찰에 수사를 의뢰함으로써 최종 판단은 검찰의 몫이 됐다. 검찰이 단순 수사의뢰라는 이유로 유보적인 입장을 보였지만 현재 경찰이 이 부분에 대해 조사중이어서 인권위의 요청이 아니더라도 경찰의 송치에 따른 검찰의 수사는 불가피해 보인다. 검찰이 일단 수사를 시작하면 결국 허 청장에 대한 책임문제로 확산될 수 밖에 없다는 것이다.
인권위는 지난달 29일 농민단체로부터 폭력진압에 대한 진정서를 접수한 뒤 10인으로 구성된 조사팀을 꾸려 경찰 현장사진과 녹화물, 집회 참가자 증언은 물론, 방송사 취재자료까지 입수해 고강도 진상조사를 벌였다.
특히 지난 주에는 진압에 동원됐던 9개 전경 중대를 서울 여의도동 현장으로 불러 진압과정을 재연했으며, 일부 경찰 관계자를 상대로 대면 조사를 벌이기도 했다.
상황이 이러하자 인권위는 전씨와 홍씨에게 폭력을 가했을 가능성이 높은 전경 중대를 지목해 수사 의뢰하는 강수를 뒀다. 이는 잘못된 공권력 행사에 대해서는 엄청하게 대처하겠다는 인권위의 의지로 해석된다.
심 과장이 “일부 전경을 처벌하는데 따른 국민적 반감이 있다 하더라도 공권력은 한계와 절도가 있어야 한다”며 “특히 저항하지 않는 시위자들에 대해서는 세세한 대응 규정이 있어야 한다”고 밝힌 점도 이런 맥락에서다.
안형영 기자 prometheus@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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